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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책에서 배우는 '추석' 매대(賣臺)의 기원

  • 말씀
  • 2021-07-29 16: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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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 3부작 다다다_'보다읽다말하다' 중에서... 세상을 직시하고(보다) 경험하는 것에(읽다) 끊임없이 숙고하며 써내려간(말하다) 흔적들을 톺아보다가 여기 옮겨옴.

 

홈쇼핑과 택배의 명절, 추석

 

예전 서울 사대문 안에 살던 사람들은 추석을 쇠지 않았다고 말해준 사람은 8대째 사대문 안에서 살아왔다는 작가 김훈이었다. 왜냐고 물으니 '추석은 농민들의 명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을걷이를 하고 그 수확을 조상과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게 추석의 의미인데, 사대문 안에는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들이나 상인들이 대부분이었으니 나눌 것도 없고 이유도 빈약했을 것이다.

추석이 농민의 명절일 뿐이라는 그의 말에 새삼 놀랐던 것은 내심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추석을 '국민적 명절'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착각을 가능하게 한 것은 추석 때만 되면 펼쳐지는 이미지와 말의 폭격 덕분이었을 것이다. 텔레비전과 신문, 각종 매체들이 '귀성 전쟁' '국민 대이동'과 같은 상투적 언어와 함께 고속도로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자동차들을 보여준다. 헬리콥터는 성묘에 나선 시민들의 모습을 찍어대고, 사진기자들은 고궁에 진을 치고 한복을 입고 놀러 나온 가족들을 앵글에 담는다.

이런 전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얼마 전 1970년대의 명절 풍경을 담은 대한뉴스를 보았다. 구로공단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마련해준 선물상자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고향으로 향하는 전세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만약 산업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생을 마감했을 이 젊은 여성들은 박정희 정권이 시행한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대거 도시로 유입된다. 이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하에서도 묵묵히 제 몫을 해냈다.

당시에는 연차나 월차 같은 개념도 희박할 때니 생리휴가 같은 '사치스런' 권리는 행사할 엄두도 못냈다. 여름휴가를 '반납'한 채 '수출입국의 한길로 매진'하는 게 미담이던 시절이니 이들에게 제대로 된 휴가란 추석과 설날 정도였다. 설령 여름휴가가 주어진다 해도 이들의 낮은 경제력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를 제대로 즐기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남녀 노동자들은 추석이 되면 자신들이 떠나온 곳, 가을이 되면 풍요로워지는 농촌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손에는 전기밥솥이나 텔레비전 상자가 들려 있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 그들의 손에는 늙은 부모가 들려준 농작물이 한가득이었다. 이런 광경은 산업화를 모종의 정당한 거래처럼 포장하는 효과가 있었다. 대도시에서 일하는 '산업화의 역군'들은 전자제품을 농촌으로 보내고, 농촌에서 '정성껏' 생산된 농작물은 최신의 전자 제품들과 교환된다. 농업에 최적화된 노동력은 농촌에, 산업화에 필수적인 인력은 대도시로 배분되는, 말하자면 이런 효과.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났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추석이 되면 고향을 찾는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서로 모인다. 그런데 이제는 흔쾌히 나눌 농작물이 없다. 그래서 택배를 이용한다. 굴비와 쇠고기와 곶감이 택배를 통해 집으로 날아온다. 과거와 비슷해 보인다. 과일과 생선, 갈비와 한과가 한 상 가득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농촌에 계신 부모님이 재배한 것이 아니라 TV 홈쇼핑이나 농협을 거쳐 배송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식들 역시 더 이상 '부모님 댁에 보일러 놔드리러' 내려가지 않는다. 필요한 전자제품이 있다면 시골의 부모들도 TV 홈쇼핑으로 구입한다. 그러니까 이제는 다들 각자의 삶을 알아서 살아가고 있다.

몇 년 전, 명절만 되면 꽉 막히는 도로를 보다가 문득, 지역마다 종교마다 다른 명절을 쇤다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신도들만 쇠고, 추석은 충청도만, 설날은 영남만, 단오는 호남만,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분산되면 훨씬 편안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명절들은 조용히 힘을 잃어갈 것이다.

매년 해외로 나가는 비행편들의 예약은 오래전부터 마감된다고 한다. 농민들의 명절이었던 추석은 한때 국민적 명절로 추앙받다가 이제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추석은 마침 해외여행을 떠나기에 참 좋은 계절에 있다. 이렇게 흘러가다간 언젠가 추석은 짧은 가을휴가쯤으로 인식될지도 모르겠다.

우리 가족은 오래전부터 명절을 쇠지 않았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는 늘 임지를 지켜야 했다. 추석이라고 마음껏 고향으로 내려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럼 우리끼리라도 명절을 쇠면 되었을 텐데, 어머니가 싫어하셨다. 몇 명이나 먹는다고 그 난리를 피우냐며 아무것도 안 하셨다. 내게 추석은 군인들에게 나누어주던 과자 선물세트 상자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롯데제과나 해태제과에서 만들어 군에 납품하던 그 추석 선물세트에는 사브레 같은 서양식 과자부터 양갱 같은 일본식 과자, 초콜릿과 사탕으로 가득했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추석은 어떤 이미지로 남을까. 농촌 인구는 점점 줄고 농업이 산업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하다. 이제 농촌은 우리가 관습적으로 그려오던 이미지와 많이 달라졌다.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성들이 대도시 소비자가 먹을 채소나 과일을 기른다.

'다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은 대도시의 중심이 아니라 농촌과 대도시 외곽의 공단지대였다. 1970년대에 농촌과 공단지대는 일견 평화로운 공존을 이룬 바 있었다. 2010년대의 농촌과 공단지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존을 시현하고 있다. '농민의 명절' 추석을 쇠기 위해 대도시에 사는 '농민의 아들딸'들이 선물을 사들고 농촌으로 내려간다는 도식은 이제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돌아갈 곳도, 가서 만날 가족도 없는 대도시의 중산층들은 명절의 북새통을 피해 해외로 떠나고, 한국의 명절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동남아시아 출신의 노동자, 농민 들은 그대로 남아 하던 일을 하거나 모처럼의 연휴를 조용히 즐긴다. 올해 추석에도 언론사의 헬리콥터는 우리 머리 위를 떠다니고 한복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고궁에 모여 전통놀이를 즐기겠지만, 추석의 의미는 우리가 원하는 원하지 않든 많이 변해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 노동에 있어서의 성차별이니 고부갈등이니 하는 명절의 부작용들을 성토한는 목소리들이 높았다. 이젠 그런 것도 다 부질없는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추석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김영하, <다다다>, 복복서가 pp.177~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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