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의사도(Apostolis Pacis) 357호에 실린 작은형제회 이종한 요한 형제의 꼭지글을 갈무리
성모님의 도상은 여러 시대의 화풍을 거치면서 다양하게 표현되어 시대마다 필요한 모성의 고귀함을 전하는 좋은 도구로 정착했다. 역사의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하면서도 더 성모님의 정확한 모습을 제시하는 것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초세기 성모님의 도상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가 제시한 성모님의 위상이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이것은 당시 문화의 영향이었다. 당시 희랍(그리스) 로마 문화권에서 아르테미스, 아테나와 같은 여신들의 위상이 대단했기에 구세주의 어머니로 믿는 성모님의 위상 역시 이런 여신과 같은 고귀한 존재로 자연스럽게 정착시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이미지를 키우게 되었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 대성당 모자이크에는 아들 예수님을 안고 옥좌에 앉아 계시는 성모님이 계시고 이 도상은 교회 역사에서 오랫동안 정착되어 왔다.
당신 아들 예수님은 인간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임을 표현하는 뜻으로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시는 몸짓을 보이긴 하나 옥좌에 앉아 계신 성모님의 위상은 아들의 섭정처럼 군림했던 조선 왕조 시기의 대왕대비를 연상시키는 막강한 힘을 지닌 여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관점의 강조로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이나 결과론적으로 성모님의 위상이 대단히 격상되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중세를 이어오면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성모님의 도상 역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고 우리와 꼭 같은 처지에서 고통을 받으시는 삶을 사셨다는 것, 이것은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강조한 것으로 그리스도 이해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으며 초대교회 전례찬가로 이해되고 있는 필리피서에서 감동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필리 2, 6-7)
이런 그리스도론의 변신으로부터 성모님의 위상도 여신이나 여왕 왕후와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 여느 인간 어머니로서 표현되기 시작했으며 이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십자가 곁을 지키시는 성모님(Stabat Mater)"이며 미술 뿐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도 대단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것은 여러 화가들과 작곡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표현되면서 성모님의 인간적인 면모, 즉 여느 어머니와 같은 성모님의 모습으로 그 고귀함을 강조하게 되었다.

오늘날 베드로 대성당 입구에 있는 피에타로 대표되며 한 인간의 어머니로서 자기 아들의 비참한 죽음을 바라보며 극도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는 성모님의 모습인데, 이것은 인간 모성의 너무도 아름다운 면을 표현했기에 신앙의 영역을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되었다. 사실 피에타로 표현되는 이 모습은 어머니로서 모성 표현에 가장 고귀하고 탁월한 표현임을 부인할 수 없기에 신앙을 떠나 인류 문화사적 차원에서도 대단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 '세 명의 증인이 보는데서 아들 예쑤를 체벌하시는 성모님'은 예술사의 변천 속에서 다다이즘(Dadaism)이라는 새로운 풍조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과거에 있었던 여러 화풍의 시작과는 좀 다른 획기적인 것인데 이것은 예술 자체의 표현보다는 시대 영향을 반영한 것인데, 바로 세계 일차 대전을 겪은 젊은이들의 반항이었다. 그리스도교 국가로 불리는 유럽이 1차 세계대전(1914~1918)을 통해 보여준 이미지는 신앙과는 전혀 무관한 야만성이었다.
사랑과 평화를 외치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는 전혀 무관한 야만적인 살상으로 이어진 1차 대전을 보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그리스도 전통과 가르침에 대해 회의를 느끼면서 반항적 몸짓을 보인 것이 바로 다다이즘(Dadaism)이었다.
작가 마르크스 에른스트는 독일의 전통적인 가톨릭 지역인 퀼른 근처에서 태어나 부모의 영향으로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다다이즘-시대 반항적인 예술 운동에 심취하게 된다. 작가는 결코 가톨릭 신응을 반대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으나 기성세대에 대한 반대를 교회의 가치를 통해 표현하게 되었다. 작가의 생각에는 교회야말로 가장 전통적인 기성 체제의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작품속의 성모님은 그전까지 어떤 양식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으로, 무슨 연유인지 대단히 분노하셨다보다. 장난꾸러기 나이의 아들 예수님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다. 성모님의 분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성모님의 얼굴 표정은 다정한 어머니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분노의 화신과 같은 모습이다. 성모님의 벌거벗은 아들 예수의 엉덩이들 사정없이 내려치는데 그 강도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예수님의 후광이 땅바닥에 팽개쳐져 있으나 여기에 아랑곳없이 성모님의 분노는 그칠 줄 모르신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여인으로 평가되는 성모님의 아들 예수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체벌의 표적이 되고 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사화는 '착하고 무난한 아들로 어린 시절을 보냈음을 알리고 있는데 말이다(루카 2, 39-40 참조).
이와는 달리 외경에 속하는 토마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의 일화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는데, 여기에선 예수께서 어린 시절에 다른 소년들처럼 동네 아이들과 싸움도 하고 여러 문제를 만들어 상당히 성모님의 속을 썩였다는 내용이 있는데, 작가는 기성세대의 모델과 같이 여겨지는 교회에 대한 반발을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일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아들 예수의 행동에 분노한 성모님의 모습, 어머니에게 사정없이 얻어맞고 있는 어린 예수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의 너무도 인간적인 면모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작가가 심취했던 다다이즘처럼 기성세대에 반대하는 모델의 표현으로 성모님과 예수 아기를 등장시킨 것이며, 당시 교회는 이 작품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쾰른 대주교의 작가 파문)
예나 다름없이 오늘의 부모들도 참으로 자녀 교육이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더 우리 가까이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성모님의 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모님이 옥좌에 앉아서 우리의 기도를 듣는 분이 아니라 당신이 아들 예수를 키우면서 겪으셨던 어려움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며 자녀들의 문제로 갈등의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성모님이시다.
교회는 성모님의 기적이나 다른 사건을 통해 성모님이 우리의 전구자로 계심을 강조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자녀 문제'로 우리와 같은 고통과 슬픔을 겪으신 성모님을 만나면서 진실로 인간적인 기도를 바칠 수 있다. 풍요로운 우리 가톨릭 신앙에 만족하면서 작가가 보여주는 성모님의 너무도 인간적인 모성에서 성모신심의 풍요로움을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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