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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코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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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새로운 초대_생태 일상; 생태 살이

  • M.콜베
  • 2021-01-22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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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초대

 

 

히말라야 안나 푸르나 초입에는 오스트리안 베이스 캠프가 있다.

그곳에는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의 조류 연구가들이 모인다고 한다.

먹잇감을 찾는 매들이 선회하며 땅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조감도'라는 말이 떠올랐다.

 

영어로는 'Bird's Eye View'라고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지어낸 말이다.

새벽녘 외딴곳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시선, 그것이 바로 'Bird's Eye View'가 아닐까?

예수님께서는 이 지상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면서 하느님과 일치하셨다.

 

'Bird's Eye View'에 뿌리를 둔 것이겠지만 'Cat's Eye View' 곧 묘감도라는 말도 있다.

움직임 없이 집중하여 어느 한 지점을 응시하며 세심히 들여다 보는

고양이의 눈으로 우리가 지나치는 일들을 새롭게 해석하라는 가르침이 담긴 말이다.

 

세상을 조망하시는 예수님의 날카로운 시선, 사람들을 측은하게 보시면서 

자신의 물과 피를 쏟아부으시는 예수님의 연민 안에 '조감도'와 '묘감도'의 의미가 다 들어있다.

이러한 예수 성심의 시선으로 우리가 머물고 있는 세상을 다시 보기 위해 글을 나눈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책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은 2003년 12월 <오래된 미래>의 저자 강연에 참석하면서 뵙게 되었다.

학교에서 열리는 독서모임에 선생님의 최근 저서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를 영순위에 놓고,

저자 초대 섭외를 마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류가 살기 위해 순환적 삶의 패턴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농사에 종사하는 인구가 50%가 되어야 국가가 생존할 수 있고 토양이 살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고 싶었다.

 

아이들의 생태 감수성을 깨우는 모임을 준비하며

'지구를 살리는 어느 가족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을 손에 들었다.

책에는 탄소 과다배출로 위험에 처한 지구만큼이나 어수선한 툰베리 가족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던 그레타의 관심을 끈 것은 오직 기후변화!

 

2019년 9월 23일,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뉴욕 UN 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용서하지 않겠다. 생태계가 무너지고 대규모 멸종이 시작했는데 당신들은 돈과 경제성장이라는

이야기만 꾸며내고 있다"고 한 그레타의 당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탈일상화의 일상화

 

일상은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기침하는 변치 않는 시간의 질서 안에서 꾸려진다.

그 일상은 인류가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반복하고 있다.

아침에는 아침밥을 먹고 각자의 일터로 나가고, 저녁이면 모여 저녁밥을 나누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정 공동체'의 일상이다.

 

'돈'이 중심 가치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를 중심으로 가정이 움직인다.

아이들이 혼자 일어나서 학교로 가고, 집으로 돌아가도 딱히 맞아줄 부모가 없다.

설사 함께 밥을 먹기 위해 모였어도 각자의 스마트폰에 집중해 있다.

일상이 달라졌다. 깨졌다. 이대로 괜찮은가?

 

우리 수녀원-샬트르 성바오로회- 본원이 있는 명동거리는 늘 사람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내려 수녀원으로 걸어갈 때면 인적이 드문 길을 찾아다녔다.

명동거리는 익숙한 우리말보다 뜻 모를 중국어와 조금 알 것 같은 일본어로 호객행위를 하는 상가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외국인이 많아야 우리나라 경제가 호황을 누리겠지... 불편을 견디자!

 

언젠가부터 하루를 시작하면서 미세먼지 앱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야 하나 마나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마스크를 쓰고 운동회를 하는 초등학생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충격적이었다.

 

인천공항은 언제나 만원이다. 어떻게 그리도 많은 이가 해외로 나갈까.

해외 나들이가 평범한 일상이 된 우리나라는 부잔가 보다.

비행기는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운송수단이라는데 이대로 괜찮을까?

 

코로나바이러스는 모든 나라의 약함과 어둠을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냈다. 전세계가 출렁였다.

이는 자본의 세계화(globalization of capital) 즉,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극단적 정치,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예견해 주는 듯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 사회는 급격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일상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일그러졌다.

마스크를 써야만 외출이 가능했다.

해가 뜨면 일어나서 가야하는 학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던 터전은 바이러스가 번지면서 셔터를 내려야만 했다.

집이 배움터이자 일터가 되었다.

 

사람들의 의식은 바뀌기 시작했다. 해가 뜨면 일어나 아침을 먹고 밖으로 향하던 하루가

학교에 가지 않아도,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에 놀라기 시작했다.

병든 일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멈췄다.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명동과 인사동 거리는 달라졌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연신 물건을 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가게들은 문을 닫았다.

인파로 붐비던 인사동 거리에는 행상들을 단속하는 마스크를 쓴 경찰들만 보였다.

 

생경했다.

3월이면 신입생 입학과 함께 바쁘게 돌아가던 학교는 고요했다.

등교 개학은 자꾸만 미뤄지고 우리 학교에서 계획한 김종철 선생님과의 만남도

(일정)연기를 위한 메일만 오고 갔다.

 

 

-참 일상에로의 회귀를 위한 몸짓들

 

우리는 멈춰 섰다.

그리고 보기 시작했다.

그간 우리가 얼마나 성찰 없이 살았는지를.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자본의 창출을 위해 무작위로 자연 파괴를 허용해 왔음을.

경쟁과 파괴를 일삼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편안하게 몸과 영혼이 깃들어 있던

우리의 잘못된 신념이 남긴 병폐를 그대로 마주해야만 했다.

비참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는 야생동물 서식지를 파헤쳐 일어난 인재(人災)라고 했다.

 

코로나19가 생명을 앗아가면서까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읽어내고 싶었다.

다양한 시각에서 보고, 듣고, 멈춰 기도했다.

죽어가고 있는 세상, 감염되고 있는 세상!

한 발자국도 집에서 나갈 수 없는 상황 속에 전 세계가 놓였다.

 

부자 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상황은 같았다.

사제들은 공포에 느끼는 사람들을 기도로 초대했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근원으로 돌아갈 때(ad fontes)이다.

 

우리는 그동안 본래의 나를 버려둔채

산업혁명 이후 세계를 제패한 자본주의를 넘어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자연 파괴의 산물인 물건들 속에 묻혀 참 자아를 잃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좋은 소식이다.

 

워싱턴에 머무는 예수회 사제는 한 인터뷰에서 

사회적 거리유지를 위해 공동체에 머물면서 오랜만에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공동체가 결속할 수 있는 기회라고 기뻐했다.

그의 목소리는 우울하지 않았다.

젊은 사제들은 텅 빈 성당에서 본당의 주인은 신자라는 것을 절감하며

인터넷을 통해 이번 사태로 혼란스러워하는 신자들을 고요한 묵상 혹은 관상기도로 초대했다.

좋은 소식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늘은 유례없이 맑았다.

공기에는 매콤한 냄새가 사라졌다.

숨쉬기가 편해졌다. 

미세먼지 신호등에는 자주 파란불이 켜졌다.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비행기는 운항을 멈췄다.

제조업이 한곳으로 모여 노동력이 집중되는 것도,

공장에서 오염된 공기와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경제성장을 위해 방치되었는데

이러한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또한 희소식이다.

 

소상공인이 겪는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자연만물이 본래의 자리를 회복해 가는 소식이 들려왔다.

세계 곳곳에서는 인간의 활동이 다른 피조물에게 횡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사람들이 집에 머물자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퓨마가 도시를 질주하고,

샌프란시스코에는 코요태가 밤거리를 배회하고,

인도에서는 멸종 위기종인 사향고양이가,

브라질 페르남부코 해변에는 바다거북이 등이 출현했다.

 

인간이 멈추니 자연이 그들의 터전으로 회귀했다.

흥이 난다.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생태계의 일원인 인간과 다른 피조물과의 조화로운 공존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세상의 지배자가 아니라 관리인으로 두셨음을 상기했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

 

'지배하여라'와 '다스려라'의 성경적 의미는 인간이 자연을

자신의 성취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켜 파괴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을 잘 관리하고 돌보라는 하느님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러기에 '지배'와 '다스림'은 창조의 완성이다.

우리 인간은 땅에서 일어나는 각종 질병과 재해 등에서 자연을 잘 보호해야 한다.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

 

 

-세계의 중심은 바로 지금 여기

 

선진국으로 명명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은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세계 최다였다.

서구 민주주의의 권위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각 나라의 방송사와 우리 외교부 장관의 인터뷰가 보여주듯

케이(K) 방역과 대구 시민들의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는 모습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집에 묵혀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마스크를 모아 경찰서에 가져다주고,

모아놓은 돈을 기부하고, 의료진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위험에 처한 곳으로 향했다.

'시민참여형 공동체주의'라는 문화적 잠재력을 세계에 보여주면서

우리나라는 어느새 코로나19 방역과 대처의 세계적 모델이 되었다.

 

놀라웠다.

무작정 서구에 대한 선망을 품고 있던 아메리칸 드림이 완전히 무너졌다.

의료 시스템이 탄탄해 누구라도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는 나라에 산다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다.

'앞 수레가 뒤집힌 자국은 뒷 수레의 좋은 경계가 된다는 뜻'의

전복후계(前覆後戒)라는 고사성어가 우리 상황과 맞물려 떠올랐다.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 작지만 큰 나라의 국민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포스트 코로나(코로나이후) 관련 담론이 쏟아져 나왔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그린뉴딜 정책은 '기후위기 극복-탄소제로' 한국을 꿈꾸게 한다.

이제 우리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체를, 경쟁보다는 공생을,

제한적 발전보다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할 줄 아는 신인류로 부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코로나19는 바이러스를 넘어 정치, 사회, 문화에서 의식구조의 변혁까지 일으키는

거대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다려 온 김종철 선생님의 생태철학 강의는 취소되었다.

부음을 들었다.

실망스럽지 않았다.

순환경제로 삶의 터전을 살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야 한다는 그분의 앞선 삶을

6월 25일, 선종 소식을 들은 그 시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땅속에 묻힌 씨앗이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오늘도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의 지나가심을 기다리던 파스카의 밤과

겟세마니에서 홀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밤을 기억한다.

초유의 코로나19는 더 본질적인 곳을 향해 떠나라는 하느님의 초대가 아닐까.

 

 

-이은주 마리 헬렌 수녀, 서울 계성고등학교/ 영성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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