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마주하며
*글쓴이 조연수, 시인/독서심리 상담사
기억에는 치유하고 해방시키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기억하는 방식도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두운 시기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략- 우리가 지나간 것을 현재의 삶 속으로 가져올 때, 삶은 더 진지해지고, 더 풍요로워지고, 더 다채로워집니다. -<위안이 된다는 것, 안셀름 그린>
이제 60을 갓 넘긴 그(녀)가 정년퇴직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입사해서 30년이라는 세월을 한 직장에 몸담았다. 퇴사 전날엔 미용실 가서 머리도 손질하고 마지막 출근 날에는 아껴 두었던 옷도 챙겼다.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 퇴직 날 저녁엔 가까운 동료 몇몇과 단골 중국 음식점에서 간짜장을 먹었다고 한다. 소박한 만찬이지만 감사했고, 그날 밤 처음으로 두 다리 뻗고 잠을 잤다며 활짝 웃었다.
그(녀)는 25살에 혼인을 했다. 아들밖에 모르는 어머니와의 갈등을 피해 도망치듯 혼인을 했고, 그 후 36년이 흘렀다. 혼인하고 딸 셋을 낳았는데, 둘째가 태어나던 해에 배우자의 일이 잘 안 되었고, 생계를 위해 아이들을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일을 시작했다. 아침마다 우는 아이들을 달래고 어르고 출근을 할 때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감기로 칭얼대는 큰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데 유난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단다. 그래서인지 그날 몸 상태도 좋지 않았고 집중하기 힘들었는데, 아차 하는 순간에 기계가 지나가면 손가락이 잘렸다.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 한 마디가 잘려나갔다.
지금은 뭉툭해졌고, 손을 내밀거나 악수를 해도 이제는 익숙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상대방이 당황하여 눈길을 피하면 자신이 자연스럽게 먼저 사고 얘기를 꺼낸단다. 처음 사고를 당하던 날 병원에 누워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배우자에게 원망을 쏟아 부으며 당신 때문이라고 했다. 당신이 돈 잘 벌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유난히 칭얼대던 아이들 얼굴도 떠오르고 절망적인 느낌으로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 나이쯤 되고 보니 그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티끌 같은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녀)는 퇴직하고 일주일 뒤 제주도로 한달살이를 떠났다.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 본 적 없었는데, 30여 년을 아이들 키우느라 직장 일하느라 집중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고 했다. 가족들은 박수를 보냈다. 진즉에 그런 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오라며 응원해 주었단다.
그(녀)는 서귀포 작은 마을에 집을 얻었다. 매일 코스를 정해 올레길을 걸었다. 바다 옆을 지날 때는 파도 소리에 잠시 머물기도 하고, 오름을 걸을 때는 바람이 좋아 김OO 사진작가의 사진 한 장면을 걷는 것도 같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마음을 비우러 갔는데 오히려 마음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걷는 내내 지난 삶 동안 어쩔 수 없었던 기억들이 툭툭 떠올라,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잠시 멈추어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고 했다.
엄마의 독선으로 상처받아 웅크리며 울던 여섯 살의 나, 울던 나를 다독이며 안아주던 아버지, 아들이 아닌 딸이어서 한 번도 안아주지 않았던 할머니에게 잘 보이려고 노래 부르며 애쓰던 나, 그 모습이 귀엽다며 알사탕을 주던 고모, 손가락 잘리던 날 얼마나 힘드냐고 위로 한마디 하지 않던 배우자를 원망하며 울던 나, 곁에서 말없이 있어 주던 친구들, 엄마는 왜 그렇게 사냐며 빈정거리는 딸들의 말에 훌쩍이며 고개를 돌리던 나, 그런 나의 편을 들어주며 위로하던 사위들...
안쓰럽고 안쓰러운 나를 마주하며 걷다 보니 매 순간 함께 해준 고마운 이들이 있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녀)는 곁에 있었던 그(녀)들이 바로 하느님이 아니었을까 하는 묵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감사하고 그 기억들이 있어 지금 나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비로소 깨닫는다며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제 그(녀)는 더 외롭지 않을 것이다. 걷는 내내 함께했던 기억, 그 기억 속에 함께 하신 하느님, 그 기억들은 오늘의 그를 있게 했고 살게 했다.
앞으로의 여정에 그(녀)와 함께 기억 속에 살아 계실 하느님. 지금도 매 순간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발췌/갈무리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품>, n.163
* 수도서원 25주년을 맞이하며 '빈 손'으로 그분과 수도회 앞에 섰다. 마침 서원 기념식도 미뤄졌다. 가진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고 마음 생각을 다잡으니 섭섭(?)할 것도 없더랬다. 그래서/그때부터 무.작.정.걷.기... 시작했다.
하루 한 시간 거리를 가늠하여 시작한 그 길(여정)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센 바람이 눈 앞을 가리고 뜨거운 뙤약볕이 온 몸을 지지더라도 마냥 걸었다. '죽기 살기로'-이대로 계속 사느냐 마느냐 고심하며- 내 수도생활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걷는 그 길은 전혀 그리고 뜻밖에 '무상무념' 일 수 없다 못해 온갖 망상과 괴상이 맞물려 비틀거릴 수 밖에 없던 여정이었다. (그 걸음걸음 거리를 합하자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일곱 번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더라...ㅋㅋ)
서원을 기념할 때까지만 걸어보고 결정하자고 시작했던 그 가파르고 험난했던(?) 일 년 여의 여정은 도리어 더 굳건하고 널찍하게 조성되어 버렸고(!) '내 수도생활 여정'은 결코 나 혼자 살아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수도회 온 가족과 성대하게 각자의 서원을 기념하면서 진정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길어올린 감사와 찬미의 '마니피캇'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수도생활 여정 내내 함께 하셨던 그.분.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일련의 <기도>, -걷기 운동-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계속 걷.는.다... 내 구원자요 정배이신 그리스도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서...
Sequela Chr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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