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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읽기> 위한 읽기_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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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2 1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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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이 건네는 새로움_성경 본문 줌아웃

 

*글쓴이 박병규 대구대교구 소속 신부, 프랑스 리옹카톨릭대학 성서신학 박사 취득, 현재 대구 가톨릭대 가톨릭신학원 원장

*(성경)읽기_문해력에 '도움닫기'를 바라는 이들을 위해 글쓴이의 '읽는다는 것'에 대한 고민-<들어가면서> pp.6~13-을 옮겨와 갈무리함

 

 

 

텍스트라는 숲속 오솔길

 

 

'읽는다는 것'은 독자의 '일'이다. 읽기는 글에 대한 독자의 고유한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성경 읽기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해되는 성경 역시 글로 쓰인 읽기의 대상이다. 성경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나서는 일은 독자들의 읽기를 통해 시작된다.

 

읽기 이전의 약속

대개 성경 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성경을 읽을 때는 '어느 정도의 객관적이고 기초적인 지식'을 필요로 한다고. 맞는 말이다. 다만 그 지식이 읽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묻는 것에 무지하거나 주저한다. 성경을 읽는 데 필요한 기초 지식이란 게 대개는 성경 언어의 이질적 표현과 고유한 문법 체계 그리고 역사적, 신학적 배경 지식에 국한된 경우가 많다.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로 적힌 성경 이야기들은 단어와 그 단어를 조합하는 문법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그렇다. '사회적 약속'이 글과 말과 그 문법을 만들어 내었다. 읽기의 대상인 글이 어떤 약속으로 어떻게 쓰였는지, 쓰인 것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읽기가 아닌, 읽기 이전의 작업이다.

글을 모르면 글을 익혀야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그래서 읽기를 위해 이러저러한 사회적 약속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짜였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것이 이른바 성경 이야기를 읽기 위한 '기초 과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빗대어 말하자면 이야기에 등장하는 단어와 그 문법에 대한 이해는 '어디서', '어떻게' 만나자는 만남 이전의 약속일 뿐이다. 읽는다는 것은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러니까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만남의 분야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이 가리키는 전망을 다음의 형태로 톺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세상

읽는다는 것은 이야기 속 표현과 단어를 통해 역사적 실재와 사건을 간접적으로 만나는 일이다. 예컨대 어린양은 십자가를 통한 수난의 역사를 살아간 예수님을 가리키며, 성전 정화 사건 이야기는 70년경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암시한다.

이른바 역사 비평적 방법론 등이 성경 이야기가 전해 주는 세상일에 대해 캐묻고, 성경 이야기가 세상일을 어떻게 재표현하는지, 그 재표현의 방식이 당시 시대의 문화와 사상에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되묻는 작업에 매진한다. 우리가 접하는 대개의 성경 공부가 이 수준에 머물고 있다.

 

프랑스 해석학자 폴 리쾨르는 '텍스트의 세상Le monde du texte'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야기는 실재 세상일과 다르다는 것,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구조화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 '이야기'라는 것이다. 실재 세상을 가리키는 듯하지만 이야기 안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구조화하고 전혀 다른 전망에로 독자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대표적 예가 요한 복음서 2장에 나타나는 성전 정화 사건 이야기다. 실재 사건은 예루살렘의 멸망이었지만 요한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으로 재해석했고 더 나아가 제자들이 믿음의 주체로 거듭나는 하나의 상징으로 성전 정화 사건을 소개한다(요한 2,2-22 참조).

 

그러므로 읽는다는 것은 이야기가 꾸며 놓은 세상에로의 신선한 여행을 시작하는 일일지 모른다. 그 여행의 길은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뻗어 있다. 하나는 이야기의 '흐름'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야기의 '짜임새'에 관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야기는 결핍과 그 해소로 흘러가는 역동적 변화의 차원도 있지만, 사람, 나무, 돌, 길, 밤, 낮, 마을, 광야, 호수 등등의 시공간적 요소가 서로 얽히고설킨 정적인 짜임새를 보여 주기도 한다.

 

우리는 <성경 본문 줌아웃>을 통해서 신약 성경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변화되는지, 그리고 그 변화의 순간순간마다 이야기가 엮어 내는 '짜임새'는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가 말하는 '텍스트라는 숲속 오솔길'을 만들어 가 볼까 한다.

그 오솔길은 '흐름'과 '짜임새'가 날실과 씨실로 엮여 있는 이야기 한 가운데에 독자가 홀로 만들어 가는 사유의 길이기도 하다. 많은 언어학자는 이야기가 모든 것을 말하고 있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곳곳에 수많은 여백을 남겨 둔다. 독자는 그 여백을 읽기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사유를 통해 채우고 다듬어 가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

다시 독자의 일로써 읽기를 생각한다. 읽기의 마지막 관점은 독자의 자리에서 이해된다. 이야기의 흐름과 짜임새를 살펴보면서 독자는 자신의 마음에 의미의 세계를 '그린다'. 글자 너머의 의미, 글자 사이에서 빼꼼히 삐져나오는 의미 다발을 독자는 그의 고유한 언어로 다시 구성한다.

써진 글을 통해 이제 독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 가는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글을 거울삼아 독자 자신을 읽어 내는 자신에 대한 고백이자, 자신에 대한 반성이며, 그로 인해 전혀 기대치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프랑스 기호학자 그레마스J. Greimas는 이야기를 읽으며 하나의 의미를 발견하는 건 이야기의 글을 또 다른 코드로 바꾸어 내는 것이라 했다. 이야기 속 수많은 단어와 문장 그리고 그것의 흐름과 짜임새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 익숙한 또 다른 코드로 바꾸어 내는 것, 이것이 읽기의 이유이자 목적이다.

 

성경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낯선 히브리어, 그리스어 단어들의 사전적, 문법적 의미를 곱씹는 것도, 지난 시간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신학적 명제를 되짚는 것도 아니다. 성경 이야기를 읽는 것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이 또 다른 우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의 제목이 <성경본문 줌아웃>인 것이다.

 

'읽기'는 이야기 세상에 파고들어 그 세상에서 느끼고 체험한 것이 독자의 삶의 자리로 전환되는 열림과 초월의 작업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새로운 탄생을 위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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