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공부합시다~ 그리스도교의<성탄절>과 유대교의 <하누카>
*크리스마스 점등식(미국), 하누카 점등식(예루살렘) 사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Christmas)와 흔히 ‘유대인 크리스마스’로 오해받는 하누카(Hanukkah)가 다가왔다. 성탄절(聖誕節)인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지만, 유대력(曆)에 따라 변하는 하누카의 경우 올해는 12월 19일부터 26일까지 8일간이다. 3년 만에 두 명절이 겹친다. 둘은 경쟁관계인가 협력관계인가.
1970년대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집집마다 찾아가 캐럴이나 찬송가를 부르는 새벽송이란 게 있었다. 집주인이 나와 선물을 주곤 했다. 음반 가게에서는 캐럴을 크게 틀고 분위기를 돋우었다. 곳곳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요란하게 빛을 발하기도 했다.
전력난이 부른 우울한 크리스마스
하지만 2022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종교 편향이나 저작권 침해 등의 이유로 예전 같은 장식이나 음악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올해는 경기침체와 이태원 참사 분위기까지 겹쳤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난(難) 때문에 크리스마스 점등 기간을 지난해 7주간에서 6주간으로, 소등 시간도 새벽 2시에서 밤 11시45분으로 당겼다. 지난해보다 소비전력을 44% 줄인다고 한다.
예수의 고향인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썰렁하다. 유대인들은 반(反)유대주의에 대해서는 흥분하고 비난하지만, 자신들의 반(反)기독교주의에 대해서는 별반 언급이 없다. 이스라엘 명문 대학인 테크니온에서 학생회가 교내에 성탄 트리를 세우자 랍비가 이를 금지시킨 적이 있다. 한 학생이 “교내 소수 기독교인들이 하누카에 반대하지 않는 것처럼 유대인들도 성탄을 기념하는 데 개입하지 말라”고 맞섰으나 효과는 없었다.
다만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속해 있어 축하 분위기가 살아 있다. 베들레헴이란 빵집(베이트는 집, 레헴은 빵)이란 뜻이다. 베들레헴 당국은 지난 11월 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라말라에서 크리스마스 축제 기자회견을 여는 데 반발, 이를 무산시켰다. 여행 가이드인 베이트 잘라는 “예수는 라말라가 아닌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PA의 결정은 베들레헴과 모든 기독교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흥분했다. 그 정도로 베들레헴 당국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지난 12월 3일 밤에는 예수탄생교회 앞 광장에서 대형 트리 점등식이 열렸다. 예수탄생교회는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정도로 입구가 작다. 누구나 그분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예수가 자라났던 북부 나사렛도 아랍계 기독교인이 많이 살기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뜨겁다.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예수의 잉태 소식을 전달받았다는 수태고지(受胎告知) 교회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풍긴다.
예수는 AD(Anno Domini·우리 주님의 해)와 BC(Before Christ·그리스도 이전)를 가르는 주인공이니, 신앙 여부에 상관없이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크리스마스는 크라이스트(Christ)와 미사(mass)의 합성어다. 크라이스트, 즉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히브리어 ‘메시아’를 헬라어로 번역한 말이다. 그리스도를 한자로 음차한 기리사독(基利斯督)에서 기독교란 말이 나왔다.
*크리스마스 카드(왼쪽)와 하누카 카드
예수의 탄생일은 성경에 없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최근 여러모로 압박받고 있다. 우선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자리는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사슴이 진작 차지했다. 산타클로스는 튀르키예 지방에 살던 성(聖) 니콜라우스 정교회 주교였다고 한다. 비(非)신자 입장에서는 ‘예수’를 언급해야 하는 종교적 부담없이 ‘산타클로스’만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다. 그래서 교계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려는 예수의 탄생 목적이 산타클로스와 선물 보따리 뒤로 가려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1931년 코카콜라가 하얀 수염에 빨간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를 광고에 등장시킨 이후, 크리스마스는 세속화와 상업화의 속도가 빨라졌다.
또 다른 시빗거리는 날짜다. 서방 교회는 그레고리력에 따라 12월 25일로 크리스마스를 지키지만, 율리우스력을 따르는 동방정교회는 1월 7일로 지킨다. 다만 러시아의 침공 여파로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올해 크리스마스를 1월 7일에서 12월 25일로 옮기는 것을 허용했다. 러시아 정부를 지지하는 러시아정교회와 거리를 두려는 조치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일이 아니라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성경에는 예수가 태어난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예수가 태어나던 밤에 목자들이 들판에서 양떼를 지켰다는 성경 구절을 감안하면, 이스라엘의 12월 25일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우기(雨期)인 데다 기온이 꽤 내려가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도 있다. 예수가 세례 요한보다 6개월 늦게 태어났고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제사장의 근무 시스템을 추적하면 예수는 초막절(Sukkot) 무렵인 9~10월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가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한 배경은 설(說)이 다양하다. 가령 기독교 공인 이전인 AD 274년 로마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이란 신전을 지으면서 12월 25일을 태양절로 제정했는데, 로마에서 기독교의 입지가 상승하면서 그날을 예수 탄생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의 다른 주장도 있다. 로마인들은 동지(冬至) 일주일 전부터 한 달간 농경신인 사투르누스와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했는데, 미트라의 생일이 바로 12월 25일이었다고 한다.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태양신 미트라에 대한 헌신적 추종자였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융성해지자 예수를 예배하는 날도 숭고한 태양의 날인 ‘Sunday’로 정하고 생일도 똑같이 정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스토리도 있다. 12월 21일 동지는 해가 가장 짧아 태양신 니므롯이 그날에 죽었고 12월 24일 해가 길어지며 살아났는데, 죽은 니므롯이 아들인 담무스로 12월 25일에 환생했다는 것이다. 그날을 태양신 생일로 숭배하는 전통을 로마 가톨릭에서 예수 탄생일로 둔갑시켰다는 얘기다.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한 이유
이렇게 다양한 배경 속에 AD 350년 교황 율리우스 1세 또는 AD 354년 리베리우스 교황 때 12월 25일을 공식적인 성탄절로 제정했다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 입장에서는 이교도의 풍습이나 축제를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이를 받아들여 기독교화(化)하는 전략을 택한 셈이다. 켈트족의 삼하인 축제를 수용하여 핼러윈으로 변형한 것과 비슷하다.
영국 청교도들은 이런 배경 때문에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반대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더 강력한 반대 운동을 펼쳤다. 청교도들은 “신약성경에는 예수 탄생일을 기념했다거나 중시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으므로, 우리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풍습이 문란하고 인간의 영혼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659~168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州)는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를 금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1870년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은 크리스마스를 공식적인 미국 연방 공휴일로 인정했다.
필자가 보기에 포인트는 다른 데 있다. 기독교에서는 특정한 장소나 날짜나 물건에 집착하는 것은 잘못이다. 구원의 메시지 자체가 중요할 따름이다. 그러니 12월 25일이면 어떻고 7월 1일이면 또 어떤가. 지금 와서 바꿀 것인가. 그저 그날을 맞아 예수의 구원을 되새기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크리스마스의 또 다른 논쟁거리는 인사말이다. 미국은 점점 다문화되고 유대인의 파워가 커지면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부담스러워 한다. 크리스마스와 하누카의 시기가 비슷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여러 종교를 뭉뚱그린 ‘해피 홀리데이’라는 인사가 득세하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도 지난해 ‘포용적 소통을 위한 가이드라인’에서 “‘크리스마스’ 대신 ‘홀리데이’를 사용하라”고 권고할 정도가 됐다.
미국에서는 1923년부터 매년 백악관 앞에서 ‘내셔널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이 열린다. 그런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하기 꺼렸고, 2010년대부터 ‘메리 크리스마스’가 잘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해피 홀리데이’란 말은 미국적 가치를 희석시키고 있다”면서 적극적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사용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11월 30일 “바이든 가족이 보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쳤다. 다음 대통령은 어떻게 할까.
크리스마스에 대해 시기적으로 경쟁관계인 것이 바로 유대 명절 하누카다. 하누카란 ‘봉헌’이란 뜻이며, 영어로도 ‘Feast of Dedication’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수전절(修殿節)이라고 적는데, 성전을 수리하고 정화한 뒤 하느님께 봉헌했다는 의미다.
*칼 리히터가 지휘하고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헨델의 메시아 앨범 재킷(왼쪽). 찰스 매케러스가 지휘하고 영국 실내 관현악단이 연주한 헨델의 유다스 마카베우스 앨범 재킷
‘메리 크리스마스’ vs ‘해피 홀리데이’
하누카의 유래는 이렇다. BC 323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더 대왕이 33세로 죽으면서, 제국은 나눠졌다. 유대는 북쪽 셀레우코스 왕국과 남쪽 톨레미 왕국 사이에 위치하게 되었다. 처음 100년간 유대는 이집트를 기반으로 한 톨레미의 지배를 받았다. 톨레미는 상당한 자치권을 유대에 허락했다. 하지만 톨레미는 셀레우코스 왕국 안티오코스 3세의 침입을 힘겹게 막아내면서 파워가 급격히 약화되었다. 유대 내부에는 톨레미를 지지하는 이집트파와 셀레우코스를 지지하는 시리아파가 대립했다. 드디어 BC 200년 파네이온 전투에서 톨레미가 패하자 유대는 셀레우코스의 지배에 들어가게 되었다.
셀레우코스 왕국의 헬라화(化) 정책은 안티오코스 4세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그는 자신을 ‘에피파네스’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신(神)의 나타나심’이란 뜻으로 자기를 제우스처럼 섬기도록 강요했다. BC 167년 안티오코스 4세는 톨레미 왕국과 싸우던 자신이 죽었다는 소문이 예루살렘에 퍼지자, 이집트에서 돌아오는 길에 예루살렘을 쳐들어가 친(親)톨레미 유대인들을 무차별 살륙했다. 이어 예루살렘 성전(Temple)의 보물을 약탈하는 것도 모자라, 유대인의 제사와 안식일과 할례를 금지하며 이를 어기면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내렸다. 예루살렘 성전을 헬라 성전으로 바꾸고, 제단에는 유대인들이 금기로 여기는 돼지를 죽여 바쳤다. 유대인들에겐 참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다. 그뿐 아니라 제우스 동상을 성전의 가장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至聖所)에다 세우고, 모든 유대인들을 제우스에게 절하도록 강요했다.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25㎞ 떨어진 모디인이라는 작은 마을에서도 안티오코스의 군인들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제우스에게 절하도록 강요했다. 이때 제사장 가문의 마타티아가 제우스에게 절한 유대인은 물론, 달려드는 군인까지 죽인 뒤 산속으로 달아났다. 마타티아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셋째 아들인 유다가 특히 용맹했다. 그는 망치를 뜻하는 ‘마카비’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산속으로 들어간 마타티아와 아들들은 시리아 군대에 대항했고, 3년 만인 BC 164년 드디어 성전을 탈환하였다.
성경의 외경(外經)으로 분류되는 마카비서(書)에는 당시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성전 탈환 당시 제단은 오염되었고 곳곳이 방치되어 있었다. 충격을 받은 유다 마카비는 돼지로 더러워진 제단을 허물어 버리고 새로운 돌로 새 제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성전 안에 있는 메노라(일곱 갈래의 촛대로 유대 민족의 상징)를 보니 대제사장의 확인이 있는 올리브 기름은 하루 분량밖에 없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적은 기름에도 불구하고 성전의 메노라는 8일 동안 꺼지지 않고 빛을 밝혔다. 제사장들은 그 기간에 성전을 다시 정결하게 했다. 유대력으로 BC 164년 키슬레브월(月) 25일에 생긴 일이었다. 3년 전 그날에 빼앗겼던 성전이 정확하게 3년 후 같은 날에 봉헌된 것이다. 유다 마카비는 키슬레브월 25일부터 8일간을 하누카 명절로 지키도록 했다. 키슬레브월은 양력으로 11~12월에 해당한다.
9개의 촛불이 밝히는 하누카
매년 하누카가 되면 이스라엘에는 크네셋(국회의사당)과 통곡의 벽 등에 거대한 하누키아(하누카+메노라)가 설치된다. 일반 메노라의 촛대가 7개인 반면, 하누키아는 9개다. 그중에서 가운데 한 개는 긴데, 이를 가리켜 종(從)이란 뜻의 샤마시라고 부른다. 하누카가 되면 하루에 하나씩 촛불을 켠다. 가운데 샤마시는 처음부터 켜 놓기에 실제로는 아홉 개의 촛불을 밝히는 셈이다. 뉴욕 등지에서 하누카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창가에 비치는 촛불이 아름답다.
하누카는 즐거운 명절로 다양한 게임을 즐긴다. 유명한 것은 드라이델이라고 불리는 팽이를 갖고 노는 일이다. 팽이는 사각 형태의 옆면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는 ‘위대한 기적이 여기서 일어났다’는 뜻의 히브리어 네 단어의 첫 글자가 적혀 있다. ‘마오즈 추르(Ma’oz Tzur)’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전통 노래도 부르고, 기름(특히 올리브유)으로 굽거나 튀긴 음식도 즐긴다. 감자부침과 도넛이 인기다.
특이한 것은 크리스마스와 하누카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 AD 1세기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하누카를 ‘빛의 명절’이라고 불렀다. 사실 BC 2세기의 사건인 하누카가 BC 5세기의 스토리까지만 담긴 구약성경에는 등장할 수 없다. 하지만 신약성경에는 딱 한 번 나온다. 바로 요한복음 10장 22절에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행각에서 거니시니”라는 구절이 있다. 예수가 수전절, 즉 하누카를 지켰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요한복음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8장 12절) 등 빛에 대해 특히 많이 언급하고 있다. 유대인들이야 관심 없지만, 기독교인들은 크리스마스와 하누카의 접점을 거기에서 찾는다. 일부에서는 하누카 시작이 키슬레브월의 25일이므로 크리스마스의 25일과 연관성을 찾아보려 하지만, 조금 지나친 생각이다.
크리스마스와 하누카를 비교할 때 헨델(J.F. Handel)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1741년 단 24일 만에 작곡한 오라토리오 ‘메시아’(헨델 작품번호 HWV 54)는 ‘할렐루야’ ‘우리를 위해 나셨다’ 등 수많은 명곡으로 유명하며, 크리스마스에 단골로 연주된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는 꺼리지만, 헨델이 1746년 작곡한 오라토리오 ‘유다스 마카베우스’(HWV 63)는 좋아한다. 하누카의 주역인 유다 마카비의 스토리가 담겨 있어서다. 곡 중에서 나중에 삽입된 ‘보아라 용사가 돌아온다(See, the conqu’ring hero comes)’는 지금도 웅장한 개선곡으로 자주 연주된다. 헨델의 두 명작은 오늘날 크리스마스와 하누카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해피 하누카!”.
출처 : http://weekl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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