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김은기 리노, 인하대학교 생명공학과 명예교수/바이오융합연구소장
누가 행복한 사람일까
가족과 용평에 나들이를 갔다. 스키장이 있는 발왕산 정상에는 주목이 군락을 이룬다. 주목은 장수를 상징한다. 정상 부근에 약수터가 있는데 물줄기가 4개다. 각각 '재물, 장수, 지혜, 사랑'이란 이름의 약수다. 저 4개를 모으면 무슨 단어가 될까?
돈은 웬만큼 있고 몸은 튼튼하고 머리는 나쁜 편은 아니고, 게다가 사랑이 넘치는 심장까지 가졌다면? 그래, 그게 행복한 사람이지. 그런데 나는 행복할까.
누가 행복한 사람이지? 돈 많은 사람일까? 첫 번째 물줄기가 '재물'이다. 그 이름을 붙인 사람은 그래도 솔직한 편이다. '성경 말씀대로라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데? 그건 소가 웃을 소리여. 돈 없어서 배 한번 쫄쫄 굶어 봐. 그 소리가 나오나.'
정말로 돈이 행복의 조건일까? 지금까지 연구 결과로는 그렇다. 돈은 어느 정도 있어야 행복하다. 곧 어느 지점까지는 소득이 올라갈수록 행복 지수가 비례적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그 이상부터는 아니다. 최근 연구 결과는 좀 더 구체적이다. 수입이 같아도 어떤 '환경'에 있는가가 행복을 결정한다.
캐나다 맥길대학교 연구진은 소득이 낮은 두 지역, 곧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와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행복 지수를 조사했다. 방글라데시의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의 15분의 1이다. 돈이 없는 그곳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느낄까?
연구 결과 두 지역의 행복 지수는 세계 최고 행복 국가라는 스칸디나비아반도 사람들과 비슷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사는 곳의 차이가 행복 지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소득이 같은 방글라데시 사람이라도 '농촌' 사람이 '도시' 사람보다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에서는 적은 돈으로도 기본 생활이 되고 그만큼 사람들이 돈에 덜 민감하다.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농촌에는 있다. 방글라데시 농촌은 옛날 우리나라 농촌을 연상케 한다. 더우면 개울가에 몰려가 멱을 감고 저녁이면 모깃불 둘레에 모여 감자를 구워 먹는다. 급하면 이웃집에 그릇을 빌리러 가는 이들에게 마을은 안전하고 맘 놓고 지낼 수 있는 곳이다.
비록 소득이 낮아도 먹고 살기에는 지장이 없고 서로 알고 지내는 곳, 그곳이 '행복 마을'이다.
돈이 행복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방글라데시 농촌이나 세계 장수촌의 공통점이 있다. 그곳 사람들은 끈끈한 유대 관계를 가진다. 서로 연결되고 소통한다. 자주 어울린다. 하나의 '공동체'다.
외로우면 단명한다
코로나19로 방문하지 못했던 한 어르신에게 전화를 드린 적이 있다. 온종일 내 전화를 기다린 것처럼 반가워하셨다. 그분은 지방으로 이사한 뒤 부인과 사별하셨다. 평소 활달하던 분이 가장 힘들어 한 점은 '외로움'이었다.
날마다 도우미가 먹고 입을 걸 챙겨주고 쓸 용돈도 넉넉했지만, 그 어르신은 뼛속까지 외로워 하셨다. 오랫동안 살았던 서울을 떠나 친구도 없는 지방으로 내려온 것이 후회스럽다고 하셨다. 부인과 사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은 돌아가셨다.
실제로 외로우면 단명한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외로움은 하루 열다섯 개비 담배를 피우는 것과 같다. 수명을 15년이나 단축한다. 젊은 층의 외로움은 우울증과 연결된다. 우울증은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다.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자살률 1위가 대한민국이란 사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우울한 사람에게는 우울증 유전자가 있다. 외로움이 인간 진화에 어떤 영향을 주어서 유전자에 프린트된 것일까.
농업시대 전까지 600만 년 동안 인류는 야생에서 살아남아 번식해야 했다. 포식자들이 우글거리는 야생에서 특별한 신체적 능력이 없는 인류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끼리끼리 뭉치는 거였다. 곧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 나누어 먹고 도왔다.
그렇게 인류는 살아남았다. 내 것을 나누어 주는 일은 당장은 아깝더라도 나중에 내 고기가 떨어졌을 때 다른 사람이 주는 고기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공동체는 인류 진화에 필수 요소여서 서로 도우면 즐겁도록 두뇌가 만들어졌다. 그럼 답이 간단해진다. 행복해지고 싶은가?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 어울려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모든 형제들>의 내용처럼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고 지금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행복해진다.
"아무도 혼자서는 삶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 우리를 지탱하고 도와줄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앞을 바라보도록 서로 도움을 줍니다. 함께 꿈꾼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8항)
*발췌/갈무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과학과 신앙>, n.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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