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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Chet Baker의 작별법_<가을 낙엽,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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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21 1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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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베이커 <가을 낙엽> 듣기(Autumn Leaves - Chet Baker & Paul Desmond Together): 

 

내려놓으며 명료해지는 것

 

*글쓴이 허찬욱 대구대교구 소속 사제

 

쳇 베이커(Chet Baker, 1929-1988)는 이십 대에 전성기를 맞습니다. 수려한 외모, 우수에 찬 목소리와 깔끔한 연주, 그리고 때마침 시작된 쿨재즈의 인기로 쳇 베이커는 단숨에 스타가 됩니다. 그는 이십대 초반에 이미 당대 최고의 연주자였던 마일스 데이비스를 제치고 <다운비트>가 선정하는 최고의 트럼펫 연주자로 뽑히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빠르게 날아올랐지만, 추락도 빨랐습니다. 약물 때문이었습니다. 쳇 베이커는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이 약물 문제는 평생 그의 발목을 잡습니다.

 

1966년 쳇 베이커는 거리에서 행인들과 시비 끝에 싸움을 벌였고, 그때 집단폭행을 당해 치아를 몇 개 잃습니다. 치아 몇 개를 잃은 것이 무슨 대수냐 하겠지만 트럼펫 연주자에게는 큰일입니다. 

이 일로 쳇 베이커는 트럼펫을 한동안 손에서 놓게 됩니다. 쳇 베이커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받들던 언론도 더는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쳇 베이커는 시대의 아이콘이 아니라 문제나 일으키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지요. 쳇 베이커를 향한 찬사도 미국에서는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1970년대 쳇 베이커는 자신을 향한 호의가 남아 있는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쳇 베이커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떠돌며 설 수 있는 무대라면 가리지 않았고, 돈만 주면 어디서건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이 시절 쳇 베이커의 사진을 보면 본 나이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입니다. 얼굴에 주름이 패었고 총기 있던 눈빛도 사라졌습니다. 연주의 질도 고르지 못했습니다. 연주가 좋을 때도 있었지만 형편없을 때도 많았지요.

1970년대 후반 쳇 베이커와 자주 공연했던 색소폰 연주자 밥 무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즈음 그가 했던 연주의 80퍼센트 정도는 별볼 일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연주가 매우 감동적이었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 누구든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차원이었죠."(제임스 개빈, <쳇 베이커>, p.551)

 

이 시기 쳇 베이커의 연주는 매우 단순해집니다. 원래도 화려한 연주를 하는 연주자는 아니었지만, 쳇 베이커는 자신의 단순한 연주를 더 단순하게 만듭니다. 그는 최소한의 기교도 부리지 않습니다. 내야 할 음을 정확히 내고 연주를 조용히 마칩니다.

그래서 밥 무버는 그 정도 연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연주였다고 혹평했지만, 당시 쳇 베이커와 함께 연주했던 필 마르코비츠는 바로 그 때문에 쳇 베이커의 연주가 대단했다고 회상합니다. 그는 쳇 베이커의 연주에서 '한 음도 뺄 것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음 하나만 빠져도 멜로디 라인 전체가 무너져버렸을 거라고 말이죠. 쳇 베이커의 연주는 단순하고 간결했지만, 그래서 다른 이의 연주보다 명료했다는게 그의 평가입니다.

 

저에겐 늦가을이 되면 찾아 듣는 쳇 베이커의 음악이 있습니다. 1977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녹음한 <가을 낙엽 Autumn Leaves>입니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 'The Incredible Chet Baker Plays And Sings;(1977년)을 명작이라 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명작은커녕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돈을 주면 어디든 달려가 녹음을 하던 때니, 힘을 기울인 앨범도 아닐 겁니다.

이 곡을 부르는 쳇 베이커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습니다. 열의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유명한 가수도 아니었던 그의 애인 루스 영의 목소리가 비틀거리는 쳇 베이커를 힘겹게 부축하는 느낌입니다. 간주에 나오는 솔로 연주도 쳇 베이커의 연주가 아닙니다.

쟈끄 펠쳐의 플루트 연주가 전반부의 간주를 이끄는데, 이 연주가 쳇 베이커의 후반부 솔로보다 더 짜임새가 있습니다. 후반부에서 쳇 베이커는 연주를 한다기보다, 트럼펫을 입에 물고 천천히 숨을 쉬는 느낌입니다.

연주는 트럼펫 소리가 아니라 쳇 베이커의 가는 숨소리처럼 들립니다. 이 곡에서 쳇 베이커는 자신을 거의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어느 곡에서보다 자신만의 분위기를 더 진하게 자아냅니다.

 

제프 다이어는 그의 평론집 <그러나 아름다운>에서 쳇 베이커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쳇 베이커는 음악 안에 결코 자신을 넣지 않고 오로지 그의 연주에게 감정만을 빌려주는 연주자라고요.

그의 연주에는 일종의 '방치'가 느껴진다고, 무無로 침잠해가는 정서가 느껴진다고 제프 다이어는 평가합니다. 쳇 베이커는 자신이 연주하는 음을 '모아들이는 방식'으로 연주하지 않습니다. 그는 '음들과 작별하는 방식'으로 연주합니다. 그가 연주하는 음들은 그와 좀 더 머물길 바라지만, 쳇 베이커는 그 음들을 간단히 떠나보냅니다. 작별 인사도 없이, 심지어 떠나보낸다는 의식도 없이(제프 다이어, <그러나 아름다운>, p.201).

 

<가을 낙엽 Autumn Leaves>에서 들려주는 쳇 베이커의 노래와 연주도 그러합니다. 음을 소유하지 않고 자시의 음을 간단히 떠나보내는 연주, 거기에 가을 나무의 모습을 겹쳐봅니다. 내려놓으며 명료해지는 것은 쳇 베이커의 연주만이 아니겠지요. 가을 나무도 그렇고, 어쩌면 사람도 그럴 겁니다. 빛바랜 나뭇잎을 떨궈야 하는 계절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내려놓고 떠나보내는 것이 무언가가 점점 선명해지고 명료해지는 과정이라면요.

 

*도움닫기: <쳇 베이커>, 제임스 개빈, 김현준 옮김, 그책, 2016/ <그러나 아름다운>, 제프 다이어, 황덕호 옮김, 을유문화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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