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바이벌 패밀리, Survival Family>
다음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불을 켜고 텔레비전을 켜고 요리를 하기 위해 가스렌지를 켜고 현관을 나서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출근하느라 지하철을 타고... 정답은? '전기'이다.
어느 날 핸드폰 충전을 다 하지 못하고 들고 나온 적이 있다. 이런 날은 배터리가 유난히 훅훅 줄어들고 보조 배터리도 없고 충전케이블도 안 가지고 나왔다. 충전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나 있는데 말이다.
이렇듯 전기는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자원이고 늘 우리 곁에 있을 거라고 잘못 믿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를 보면서 전기의 중요성, 나아가 전기가 없는 세상을 막연히 상상해 보았던 현실 아닌 현실을 보게 되었다.
등장인물인 평범한 일본의 가족은 우리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아빠는 무뚝뚝하고 엄마는 자녀들과 아빠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대학생 아들은 헤드폰을 늘 끼고 있고 밥도 자신이 사온 밥을 먹고, 딸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소위 요즘 아이들이다.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이 되었는데 다들 늦게 일어난다. 갑작스런 정전으로 배터리가 들어있는 시계마저도 멈췄다. 급하게 대충 차려입고 현관문을 나와 보니 동네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다. 그것도 멈췄다.
회사도 학교도 가보니 거기도 정전이라 일을 할 수 없어 다른 이른 귀가를 한다. 집에 와 보니 여전히 정전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하루 이틀에 끝날 거 같지 않다고 느끼고 아직 오사카에는 정전이 되지 않았다는 출처 없는 소문을 듣고 하나 둘 씩 피난길에 오른다. 며칠 버티던 주인공 가족도 처가가 있는 곳으로 피난길에 오른다.
도쿄에서 처가가 있는 가오시마까지는 고속열차로 8시간, 고속버스로 15~17시간, 비행기로 1시간 30분. 그러나 모든 교통수단도 멈추었기에 걸어서 피난을 떠나기로 한다. 다행히 이 가족에게는 자전거가 있다.
피난은 이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피난 동안 하루하루 생존경쟁이 드러난다. 음식물 등을 확보하기 위한 돈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물물교환만이 가능하게 되었다. 음식과 교환하려고 롤렉스 시계와 수퍼 카의 열쇠를 내미는 사람을 쌀가게 주인은 가차 없이 무시해 보린다.
평소 무관심했던 것들의 가치와 관계가 뒤바뀌는 모습이었다. 너무나 힘든 피난길에서 이 상황이 큰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그룹도 있는데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그들의 모습과 신식으로만 살다가 구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 사람들의 삶의 지혜를 엿보게 되는 재미도 영화는 보여준다.
각 상황에서 서로 다른 아쉬움을 드러내는 장면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기가 없어서 아쉬워하는 반면 시골의 어느 할아버지는 시골에 전기보다 노동 인구가 없다는 게 아쉽다고 말한다.
단 며칠 만에 기본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게 된 이 가족은 긴 피난에 지쳐가면서 서로 비난도 하지만, 지금은 비상상황이라 계속 서로를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가장인 아빠도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고 식구들도 그런 모습에 뭉친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도 우스꽝스럽지만 진지하다. 네비게이션에 의존하지 못하니 지도를 보고 길을 찾고, 고속열차가 아닌 증기 기관차를 타고, 전기로 물을 퍼 올리지 못하니 펌프를 이용해서 물을 사용하고, 우리가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 시각장애인들이 깜깜한 터널을 길안내 해줘서 무사히 밖으로 나오는 도움을 받는다.
아날로그 방식은 느리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고 할 수 있는데 자꾸 그 존재조차 잊으려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장장 100일 넘게 걸려 외가에 도착한다. 할아버지는 옛 방식으로 살아가고 계시므로 전기에 크게 상관없다. 자급자족으로 식량을 구하고 나눠먹고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잠을 자고 이 가족들도 그렇게 전기가 없는 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주인공 가족이 각자 가장 중요시 여기는 물건을 내려놓고 포기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며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도 배웠다. 그러나 영화는 재난 앞에서 취약한 사회 구성원인 반려동물, 고령의 노인이 가장먼저 버려지는 안타까운 장면도 보여준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전기가 들어온다. 그동안 이들은 시청각이 아닌 몸으로 생존법을 익히며 이제 이들은 집을 공유만 하는 가족에서 끈끈한 유대감이 생긴 진짜 가족으로 살아남았다. 집으로 돌아 온 가족의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영화 초반 전기가 끊긴 밤, 식구들은 전기로 밝힌 야경 대신 처음으로 불 꺼진 도시의 밤하늘의 별을 본다. 은하수를 보며 사전에만 있는 줄 알았다며 놀라는 딸의 모습에 나 역시 네온사인으로 환히 밝혀진 도시의 밤 풍경에 익숙하지 깜깜한 도시를 경험해 본 기억은 없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 제목처럼, 이 영화의 제목을 <불을 끄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로 바꿔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발췌: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소식지 <품> 갈무리
*글쓴이: 홍선진, 가톨릭여성연구원 미디어 영성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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