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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코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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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재즈=소통=시노드

  • 말씀
  • 2022-08-17 10: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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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마일즈 데이비스(1926~1991), 트럼펫 연주가

 

 

들은 대로 연주하세요

**글쓴이 허찬욱 도미니꼬, 대구대교구 소속 사제로 대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재즈 색소폰 연주자 조 로바노는 후배 연주자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이렇게 당부합니다.

"제발 외운 대로 연주 하지 말고 들은 대로 연주하세요."(Play what you hear, not what you've memorized)

즉흥연주를 주고받는 재즈 연주에는 여러 변수가 있습니다.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만 고집해서는 안 되고, 함께 무대에 오른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추어야 합니다. 동료 연주자가 지금 어떤 호흡으로 연주를 하는지 귀여겨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의 연주에 호응하는 방식으로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같은 곡이라도 누구와 연주를 하느냐에 따라 연주는 달라집니다. 심지어 같은 사람과 같은 곡을 연주해도 연주할 때마다 다른 연주가 됩니다. 곡을 연주하는 장소와 연주자의 기분에 따라 연주는 미묘하지만 아주 분명한 방식으로 달라집니다.

훌륭한 연주자는 그 작은 차이를 놓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치고 나올 때 조용히 뒤로 물러날 줄 알고, 상대방이 뒤로 물러날 때 공백이 생기지 않게 음音의 빈 공간을 채울 줄 압니다.

좋은 연주자는 남의 연주를 잘 듣는 연주자입니다. 트럼펫 연주자인 윈턴 마설리스는 <재즈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재즈 음악인은 듣고 소통해야 한다. 당신은 다른 연주자가 즉흥 연주할 내용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따라서 들어야 한다. 반주 역시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것이기 때문에 독주자는 반주자가 연주하는 논리와 즉각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가능한 한 재빨리. 완전하게. 그래서 모든 연주자는 재즈를 지금 막 만들어진, 모든 사람이 같은 집중력으로 듣고 말해야 하는 음악으로 이해한다."(윈턴 마설리스, <재즈선언> 61p)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말을 할지, 무엇이 정답인지 정해 놓고 사람을 대하는 사람은 '남이야 어떤 연주를 하든, 나는 내가 외운 대로 연주하겠다'는 고집스런 연주자와 같습니다.

동료 연주자는 이 고집스런 연주자에게 억지로 맞추어야 하거나, 혹은 동료 연주자가 맞춰 줄 마음이 없다면 연주는 온통 엉망이 되겠지요. 좋은 연주는 서로 잘 주고받는 연주입니다. 윈턴 마설리스의 말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 어떤 위대한 재즈 그룹의 음악을 듣더라도, 당신은 한 연주자의 즉흥적인 부름에 대해 신중함과 우아함과 품위를 가지고 응답하는 또 다른 연주자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 부르고, 듣고, 응답하는 의사소통의 기초를 가르쳐준다."(같은 책, 67p)

 

좋은 연주자는 상대방이 어떻게 연주하든 신중함과 우아함을 가지고 응답합니다. 허비 행콕(1940~ , 피아노 연주자, 영화배우)이 마일스 데이비스를 회상할 때 자주 풀어 놓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은 거장이 된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도 신인일 때가 있었지요. 신인이었던 허비 행콕이 당대 최고의 트럼펫 연주자였던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무대에 올랐습니다. 

허비 행콕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마일스 데이비스가 트럼펫 솔로를 연주할 때, 피아노로 잘못된 코드를 치고 맙니다. 누가 들어도 마일스 솔로 연주와 충돌을 일으키는 '틀린' 코드였지요. 거장의 솔로연주를 망쳤다는 생각에 허비 행콕은 그만 얼어버리고 맙니다.

*좌측 사진. 한 무대에 선 마일스 데이비스(좌)와 허비 행콕(우); 우측 사진. 도서<마일스 데이비스>, 존 스웨드 지음

 

바로 그 순간, 마일스 데이비스는 자신이 연주하던 멜로디를 허비 행콕의 잘못된 코드에 맞게 바꿔버립니다. 허비 행콕의 잘못된 코드가 '맞는' 코드처럼 들리도록 말이지요.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거장에게는 애초에 틀린 음이란게 없었습니다. 마일스는 들리는 음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음이 나오더라도 거기에 곧바로 맞춰갔습니다. 유심히 귀 기울여 듣고, 들을 것에 즉각적으로 맞춰갈 수 있는 이 순발력과 유연성이 마일스 데이비스라는 거장이 가진 힘이었지요.(<마일스 데이비스>, 존 스웨드, 김현준 옮김, 474p)

 

신앙인의 언어도 그렇게 유연하면 좋겠습니다. 신학을 좀 배웠다고 외운 대로 말하지 말고, 사람의 말부터 곰곰이 들으면 좋겠습니다. 곰곰이 들어본 후에 생각해도 다 들은 후에 말해도 늦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빨리 판단하고 선과 악을 선명히 가르는 것이 신앙 언어의 본령은 아닐 것입니다. 남의 말을 천천히 듣고, 말할 때는 충분히 고민한 후 겸손하게 말길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신앙을 말하는 방식이면 좋겠습니다.

외운 대로가 아니라 들은 대로 연주하는 재즈 연주자들처럼, 우리도 신앙을 말할 때 우선 듣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동료 연주자의 틀린 음도 맞는 음으로 만들어내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유연성이 신앙의 언어에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갈무리: 생활성서 n.469, 작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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