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축성/봉헌생활자들이여... '탄소사회'가 무엇이고, 그 끝을 말하는 '종말'에 대해... 공부합시다~
사람을 살리는 전환, 탄소사회의 종말을 꿈꾸며
-<탄소사회의 종말>을 읽고
*글쓴이 문지혜 수녀,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소속(*어려운 책 소중하게 읽고 글로 나누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닥쳐온 코로나19, 이 작은 바이러스는 우리 일상의 평범한 삶을 앗아갔다. 평범하고 익숙해서 창조의 아름다움과 은총의 감사를 잊었던 우리는 고통과 좌절의 세상 속에서 지구가 병들었음을 몸으로 절실히 느꼈다.
기후의 위기와 생태계가 파괴되는 자연 과학적 문제들은 더 이상 자연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식량 문제, 주거지의 파괴, 국가간의 자원 쟁탈 등과 같이 사회적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가난한 이들의 삶을 더욱 쓰디쓰게 만들었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앗아가는 듯했다.
지구에 당면한 기후와 생태계의 문제는 내게는 엉망으로 뭉쳐진 커다란 실타래 같았다. 그래서 기후 악당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화석연료 의존 정책들에 대해 한숨 쉬며 비판하거나, 땅과 바다, 자연 속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가난한 농어민들이 예측 불가능한 기후 위기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들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정말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인가? 나는 무엇을 기도하고 어떠한 삶의 모습으로 세상에 서 있어야 하는가? 고민이 깊어질수록 조금씩 이 문제를 제대로 알고 싶었다. 수도회 JPIC에서 마련한 "기후 위기시대, 양서(良書)에 길을 묻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도 지구 생태계의 몸살 앞에서 그저 방관자로 있고 싶지 않아서 였다.
제시된 다른 책 중 특히 <탄소 사회의 종말>은 그간 나의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해주는, 그야말로 양서(良書)가 되어 주었다.
-탄소 사회와 탄소 인간
저자(조효제)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탄소 사회라 칭한다. 탄소 자본주의의 논리와 작동방식으로 발전과 성장의 사탕을 제공하는 달콤한 중독이며, 이에 따라 파생된 불평등이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의 체제라 설명한다. 산업 혁명 이후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해야만 돌아가는 사회시스템이 만들어졌고, 이 시스템은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주요 기업 및 산업계의 성장과 부를 증가시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어왔다.
화석연료 중심의 발전소와 그에 따른 국가 설비는 오랜 세월 동안 나라의 에너지 정책을 재생에너지가 아닌 화석에너지 중심으로 돌아가게 해 왔다.
탄소 사회다! 강박적이고 과시적인 소비주의를 추구하는 가치관과 일회성 소비 양식이 사회적 선망과 부유함의 상징으로 간주 되어 오는 동안 대기권으로 끊임없이 온실가스들이 배출됐고, 기후 위기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기후에 빨간 불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탄소 사회의 길들여진 탄소 인간들은 에너지, 식량, 교통, 주거, 재산, 소비 등 인간 활동의 거의 전체 영역에서 무한대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허언하는 경제학만 올려다본다. 그래서 저자는 기후 위기란 자연과학적으로 정의되고 보편적으로 설명되는 차원을 넘어 사회학적인 접근과 해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19세기 산업혁명은 화석연료의 사용과 국력을 정비례 관계로 만들었다. 무수한 탄소배출로 획득한 부와 군사력을 동원한 선진국들은 이를 국가 간 경쟁, 자국의 이익 보호의 수단으로 활용했으며 가난한 나라를 쉽게 식민지로 만들어왔다. 화석연료로 막대한 이익을 얻는 기업들 역시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론을 조작, 왜곡하여 사람들의 문과 귀를 가려왔다. 어떻게 이제껏 이런 일이 가능해 왔는가? 그것은 국가와 사적 자본이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자연 자원을 무한정 착취할 수 있도록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사회의 윤리적/법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신자유주의는 기후 위기에 더욱 불을 붙였다. 국제무역으로 교통과 운송이 대폭 증가했고, 산림 벌채가 증가했으며 도시가 확장되었다. 개발을 명목 삼아 야생지역을 밀고 불태워버림으로써 생물종 서식처는 무참하게 파괴되었고 생물다양성은 심각하게 감소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는 그 개발의 결과로 번번히 인수공통 바이러스들에 시달려야 했고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발전을 위해 환경에 대한 규제를 없애고 상품의 단가를 낮춰 소비자에게 유리한 이득을 가져다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1970년대 후반부터 화석연료에 탄소세를 부과했더라면, 그래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며 재생에너지 투자 발전에 적극적이었더라면 오늘날 인류에게 이러한 기후 위기가 닥쳤을까 싶다.
신자유주의와 같은 경제적 사조는 기후 위기를 초래한 원인 제공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개도국에서 저임금으로 대량 생산된 의류들이 물밀듯 밀려 들어올 때 우리는 그저 그 제품의 저렴한 가격 덕분에 필요 이상의 의류들을 사서 재어두곤 했다. 자원 낭비, 에너지 낭비, 노동력 착취, 환경오염은 떠올리지 않은 채 말이다. 설령 그런 불합리와 부조리를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강박적 소비주의에 물든 삶의 습관을 바꾸기는 사람은 드물어 보인다.
탄소 사회 덕분에 세상이 많이 편리해졌다. 그러나 내 안에 의구심이 든다. 이 모든 개발과 발전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고 지금 누구를 행복하게 하고 있는가?
-기후변화에 대한 심리적 장벽들
감염병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아직 많은 이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자신과 사회적으로 거리가 먼 존재라 여기며 변화를 위한 행동에 소극적이다.(* "저는 아니겠지요?"...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네...)
이 책의 저자는 기후 행동에 대한 여러 가지 심리적 장벽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행동 효과의 회의적 인식'이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거대한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을 때 즉, 행동의 효능감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사람들은 무기력에 빠지고 행동에 나설 이유를 찾지 못한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저비용 효과'가 있다.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해 압박감을 느끼기에 비용 부담이 적은 행동을 택함으로써 효과는 적지만 겉으로는 뭔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말한다.
그 밖에도 기후변화가 같은 담론에는 아예 신경을 꺼버리는 심리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입시, 타인과의 비교, 줄 세우기, 숨 막히는 경쟁으로 인해 자기 한 몸 건사하기 벅찬 우리 사회에서 이런 심리적 장벽은 흔히 목격된다. 타인과의 연대, 미래 희망, 후속 세대와의 연결성 같은 것을 생각할 정서적 여유가 없는 사회 속에서 쉽게 발견되는 무관심이다.
-사람을 살리는 전환, 정의로운 전환
기후 위기로 파생되는 문제들이 생명권, 건강권, 생계권, 자기 결정권, 물 권리와 위생권 등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인권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더 이상 무관심하거나 방관할 시간이 없다. 기후 대책은 과학적, 경제적 논의의 차원을 넘어 생계와 생존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기후 위기가 지속될수록 불평등은 가속화되고 정치적 갈등, 국제적 분쟁은 더 심해질 것은 예상되는 시나리오이다. 이러한 문제 속에서 대두되는 개념이 '정의로운 전환'이다. 탄소 감축을 위한 성급한 전환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장기적 전망 하에서 취약계층을 확실하게 보호하고 모두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기후 전환만이 더 큰 재난을 막을 수 있고 감염병 등의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저자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가장 첫 번째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사람들의 관점을 올바로 정립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자기 혼자만 살려는 이기심을 극복하고 모두 함께 위기를 극복하려는 도덕과 윤리의식을 바로 세우는 것을 우선으로 강조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축성/봉헌 생활자들의 소명
이러한 관점의 전환에서 종교/수도자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구환경은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잠시 빌려 쓰는 하느님의 창조물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기후 행동을 위한 출발점일 것이다.
성소를 살아가는 이들이 알고 있듯, 축성생활의 본질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삶, 경쟁과 분쟁이 아닌 나눔의 삶, 보편적 사랑과 공동체적 일치, 즉 대안 사회의 모델을 세상에 제시하는 삶이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소비지향적 세상 한가운데서 하늘나라의 가치를 다시 회복하는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기후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넓은 범분야적 쟁점이기 때문에 경제, 산업, 여성, 인권, 복지, 노동, 도시행정, 국제 개발 협력 등 모든 분야에서 관심을 가지고 각 분야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힘을 보태야 한다.
축성 생활 역시 그리스도의 가치와 복음적 생활양식으로 작금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창조된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세상이 알게 하는 것, 문제의 근본 원인을 직면하는 힘뿐만 아니라 당장 구체적 결과가 없어 보여도 꾸준히 도덕적 행동을 선택하는 내적인 힘을 키우는 것, 연대와 정의를 선택하며 사는 것은 가치관의 회복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회복의 과정에서 우리는 그동안의 자본주의가 수반해온 폐해나 경제 논리에 대항할 사회적 응집력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걸어가는 매일의 일상, 아무것도 아닌 듯한 시간조차 그저 흘러가고 또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님을 안다. 순간을 충실히 살면서 그리스도가 보여준 보편적인 사랑과 창조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존재들, 이런 작은 빛들이 모일 때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해 배우고 알아가는 시간은 내 생활 속 작은 습관과 행동이 환경에 더 유익한 방향으로 향하도록 의식하고 깨어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축성 생활이라는 삶의 양식은 세상의 가치에 휩쓸리지 않고 진정으로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식별케 하는 중요한 자리가 되었다.
거대한 문제 앞에서 절망할 것이 아니라 작은 실천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동시에 거시적인 안목을 넓히고 국가 정책과 세계 동향에 열려 있는 것, 그리고 나의 삶 속에 더불어-함께-나눔의 가치를 사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번 독서 프로그램은 고통받는 어머니 지구 속에서 올바른 정의와 평등을 이루고 변화를 희망하며 살아야 함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평화와 정의 그리고 피조물 보호는 서로 철저하게 연결된 주제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 관련됩니다." -찬미받으소서, 92항
** 수도회 소장/나눔/배포용으로 구입한 도서...열공~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