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임향복, 가톨릭여성연구원 미디어 영성팀, 품(n.160)
(-나이들어 나/혈육과 화해하기)
인생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예상치 않은 변화를 맞이한다. 사계절은 똑같이 오고 가는데 주변 환경은 일정하지 않게 다가온다. 노후가 되면 평화로움 속에서 시간을 보내리라 희망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출가와 노화가 주는 불편은 예기치 않은 불안으로 이어진다.
현재의 내 모습을 보년서 90세 가까이 홀로 버티어내신 엄마를 바라보게 되었다. 지난 세월동안 나름의 서운함으로 마음이 닫혀있었지만, 유한한 시간 앞에서는 유구무언이 되어 바로 친정으로 뛰어갔다. 갑작스런 동거가 시작되었다. 노쇠한 몸으로 매일 일상을 보내는 것 또한 얼마나 힘겨운 일임을 보게 되었다.
지금껏 내가 잘 사는 것만이 효도인줄 알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 이젠 그런 생각은 내려놓고 하루하루를 편하고 자유롭게 살아간다. 늦었지만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두 사람 안에 있던 매듭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면서 평화가 깃들여진다. 그동안 각자의 생존을 위한 세월을 보냈다면 지금주터는 더불어 사는 공존의 방식으로 방향을 잡은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
동변상련의 공감을 안겨 준 영화, 2022년 5월 개봉된 넷플릭스 최신작 '토스카나'는 르네상스 문화중심지(피렌체) 이탈리아를 그립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싸이프러스 나무가 쭉쭉 서 있는 발 도르치아 들녘을 걸었던 즐거움도 반추하게 한다.
메르디 아바즈 감독은 현대적 감각이 강한 북유럽 덴마크와 중세풍의 멋과 맛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토스카나의 문화를 사이사이 넣으며 주인공 테오 달이 성장해 가는 행로를 그린다.
테오 달은 덴마크에서 멋진 식당을 운영하는 셰프로서 음식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려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현재 식당보다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재력가 스폰서를 구하려다 협상에 실패한다. 낙심한 가운데 아버지로부터 온 유서를 들고 엄마를 찾아간다. 특별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아들에게, 엄마는 "비범한 사람도 행복해야 해"라며 이탈리아로 떠나는 테오의 등 너머로 당부의 말을 전한다.
아버지 레오 달은 토스카나 옛 성에서 식당을 경영하며 여생을 보내다 3주 전 아들에게 식당을 물려주고 하늘로 떠났다. 계란요리만 1년 동안 연습시켰다는 것으로 보아, 엄하고 정확한 성격을 지닌 아버지는 토스카나식 음식에 자부심을 갖고 지내왔다. 돌아가신 후 찾아가게 된 고풍어린 어린 시절의 고향집. 부모의 별거로 아버지의 모든 면을 부정했고, 임종 때조차도 연락을 안 한 보기 드문 관계이다.
관계가 나쁜 상태에서 테오는 성공하는 사람으로 부상하고 싶어 한다. 증오심 가득한 아들의 마음에 엄마는 "너는 -엄마와 아빠의-열정으로 만들어진 사람이고, 사랑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아버지 탓을 하지 말고 탓을 하려면 엄마에게도 탓을 하라"고 마음에 응어리를 지닌 아들에게 균형을 잃지 않는 시선으로 살아가기를 부탁한다.
부모님의 깊은 속내를 알기까지 보통 자식들은 모르고 지내거나 부정적 감정으로 혼란을 겪다 나이 들면서 뒤늦게 깨닫는 것 같다. 마치 우리가 하느님 사랑을 부정하고 모를 때 내 생각과 말과 행위가 '내 탓'이 아니라 '제-저 이- 탓'으로 바뀌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n James, 1842~1910)는 인간들은 습관들의 묶음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테오는 아무 미련도 없다고 생각한 그곳을 매각하고 덴마크에 투자하기로 결정한다. 아버지 밑에서 오래도록 함께 식당을 경영한 소피아의 결혼식 음식을 성대히 준비하여 높은 매매가로 계약하려던 중, 소피아와 어린 시절 추억이 있었음을 새삼 알게 된다. 그녀의 결혼식 날 밤 그 여인을 향한 사랑을 직시하게 되고 서서히 무너지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 사이에서 테오는 고뇌로 몸부림친다. 비몽사몽간에 물속에 뛰어든 그는 아버지의 등에 업힌 어린 아이가 되어 즐겁게 수영하다 가까스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무겁게 짓누르던 아버지에 대한 어둔 감정들을 마침내 씻어내고 자신의 뿌리를 그곳에 내리기로 결정한다. 예전에 몰랐던 아버지의 사랑과 소피아의 사랑으로 테오는 예전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변화를 준비한다. 두 동강 낸 아버지 동상을 가까이 바라보며 와인으로 용성의 잔을 든다.
힘들이지 않고 우아한 전경(Sprezzatura스프레차투라, 노력하거나 신경 쓴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 가장된 무심함)을 볼 수 있는 벤치에서 자주 지냈다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죽은 자와 산 자는 화해의 시간을 갖는다. 연인 소피아의 말대로 "음식은 사랑으로 만드는 것"을 깨닫고 동료들에게도 부드럽게 이해하며 배려하는 태도로 대화하는 성숙한 셰프가 된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점점 거칠어지는 세상에서 "생각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행동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습관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인격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 심리의 형태가 이렇게 변화됨을 일깨워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사랑과 이해로 다져가는 우리안의 토스카나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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