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CODA)는 농인 부모에게서 난 건청인 자녀를 뜻한다고_Children Of Deaf Adult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수상 호명을 한국배우(윤여정)가 수어로 표현(배려)했다고 온라인에서는 난리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먼저 만났기 때문에 헐리우드 영화에 딱히 꽂히는게 없다. 여기서 영화 내용을 전부 스포일러 할 수는 없으나 영화를 보기위한 이정표 정도만 제시해보련다.
당연한 것에 물음표를 던지다(방송 작가, 김연기 라파엘라의 글, '대중문화 속 그리스도의 향기'에서 일부 가져와 갈무리 함)
(농인)부모가 (건청인)딸의 (노래 부르는)재능을 마냥 응원할 수 없는 건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에게 '당연했던 많은 것'을 뒤집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모두 농인인데 딸이 노래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도 없고, 직접 듣고 확인할 길도 없다.(반대로 건청인 부모와 농인 자녀의 입장도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영화 <홀랜드 오퍼스>)
건청인들은 농인들을 우습게 여길 게 뻔하다고 생각하니 자신들이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여긴 적도 없고 오히려 어쩌다 한 번 만나는 농인 친구들을 더 가깝게 느낀다. 루비(딸)가 떠나면 마치 갓난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와 처음 코로 숨을 쉬듯 가족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마주해야 한다.
"내가 평생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루비의 물음에 가족은 당연하게 여긴 일이 당연하지 않았음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네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네가 못 듣길 기도했어. 의사 선생님이 네가 듣는다고 말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더라. 우리가 제대로 소통을 못할까봐 걱정했어. 내가 농인이라서 나쁜 엄마가 될까 봐." -영화 <코다> 중에서
나에게 당연한 것이 부정당하면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바리사이들도 그랬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실 때 배고픈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먹는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니 바리사이들은 율법에 따라 제자들을 죄인으로 여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나무라기는커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12,7) 하시더니 회당에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시기까지 한다. 바리사이들은 당황했고, 자신들의 오래되고 신성한 율법을 부정하는 예수님을 쫓아낼 궁리를 한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이 구현하려는 하느님의 뜻은 잊어버리고 그저 지켜야 할 전통으로만 여겼으니 율법의 틀에 갇힌 것.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참뜻을 알고 계셨으니 율법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해석을 몸소 보여 주셨다.
질문해야만 답을 얻는다
루비의 합창단 음악회에서 가족들은 (들을 수 없으니) 지루하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둘 읽기 시작한다. 루비의 노래에 행복하게 웃는 사람, 눈물을 훔치는 사람, 몸을 움직이면서 리듬을 타는 사람... . 딸의 노래를 직접 들어 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그 노래에 무언가 특별한 힘이 있음을 믿게 된다.
그동안 루비와 가족에겐 평생 함께 고기잡이를 하는 게 당연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루비가 자기 없이는 세상과 단절될 가족을 걱정하자 오빠가 외친다. "우린 무력하지 않아. 그 사람들이 농아인과 상대하는 법을 배우라고 해!" 가족들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로 루비를 고집하는 대신에 세상과 직접 마주하기로 한다.
사실 청각장애를 빼면 이들은 마을 사람들과 공통점이 훨씬 많다. 같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 행복하게 살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서로 다르니까 통하지 않을거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이들은 비로소 진짜 소통을 시작한다.
루비의 노래는 자신과 가족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연한 듯 어제와 똑같이 살아갈지, 스스로 생각하면서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갈지, 이들은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기 쉽지 않지만 기꺼이 껍질을 깨고 새로운 세상에 나서겠노라 답했다.
다시금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기도는 왜 할까, 신앙은 왜 필요할까?' 정답은 모르겠다. 앞으로도 우리가 신앙의 의미를 다 이해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의무니까, 원래 그런 거니까.'라고 쉽게 대답하지는 말자. 영혼은 텅 빈 채 몸만 성당을 오가지는 말자. 가끔 무례한 답을 할 수도 있고 대충 넘기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묻고 또 묻자. 하느님의 뜻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때까지, 교회가 오랜 시간 쌓아 온 신앙의 유산이 진짜 내 것이 될 때까지.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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