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홍성진, 가톨릭여성연구원 미디어 영성팀(* 갈무리: 품, n.157, 확대경)
학교에 간다. 어깨에는 책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신발 주머니, 또 한 손에는 도시락을 들고 간다. 수업이 시작되고 오전 수업이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맛있는 수다와 더 맛있는 점심식사를 한다. 우리엄마 반찬, 내 친구엄마 반찬 한데 어울려 먹는 이 시간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한층 친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묻는다. 그 시절 도시락에 무슨 반찬을 싸 갔느냐고. 대부분의 대답은 도시락은 싸가는것만으로도 다행이고 반찬은 뭐 특별한 게 없지, 그저 김치만 있어도 좋았고, 쌀밥을 싸가는 건 어려웠다고. 한켠에는 밥, 나머지 한켠에는 김치가 담긴 도시락을 책가방에 넣어 가면-통학버스 안에서 책가방이 잠시라도 누웠다 일어나는 사태가 벌어지면- 김칫국물이 새서 교과서와 공책은 빨갛게 물이 들고 냄새가 나고 또 겨울이면 난로위에 도시락을 포개어 올려 따뜻하게 먹을 수 있었는데 그것도 중간 중간에 자리를 바꿔주지 않으면 맨 아래 도시락은 타거나 눌어버리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세월은 흘러 밥 따로 국 따로 반찬 따로 이렇게 구성된 보온 도시락이 나와서 점심시간이 되어도 따뜻한 도시락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마저도 뒤로 한 채 이젠 학교 단체 급식이 많이 생겼다. 단체급식으로 엄마들은 도시락 챙기는 수고를 덜게 되었고, 아이들은 모두 균형 잡힌 영양식을 먹게 되어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도시락 세대들은 친구들과 둘러앉아 반찬을 나누어 먹으며 수다를 떨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스탠리의 도시락'이라는 영화를 보면, 우리 때도 분명히 형편이 어렵거나 사정이 좋지 않아서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친구가 있었을 텐데, 왜 그때는 잘 살피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인공 스탠리는 Holy Family School이라는 가톨릭 학교에 다닌다. 스탠리는 어딘지 모르게 교복이 말끔하지 않고 상처 난 얼굴로 등교하기도 한다. 늘 누구보다 일찍 와서 학교에 있는 예수가족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교실로 들어간다. 수업도 열심히 듣고 발표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춤도 잘 추고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성격도 좋고 그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핵인싸'다. 그러나 그런 스탠리가 점심시간만 되면 오늘은 나가서 사 먹으려고 돈을 가져왔다, 엄마가 바쁘셔서, 아니면 집에 가서 먹고 올 거라는 등의 핑계를 대고 그 시간을 피해 밖으로 나가서 물로 배를 채우고 들어온다.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 친구들은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실 때까지 나눠먹기를 권하며 스탠리와 함께한다. 그리고 스탠리의 재능을 알아봐주는 로지 선생님의 보살핌으로 스탠리의 학교생활은 재밌고 즐겁고 그렇게 흘러가는 듯 했다. 식탐 대마왕이라 불리는 베르마 선생님의 엄청난 선포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화는 스탠리가 도시락을 못 싸오는 이유가 단순히 부모의 부재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을 돌봐주는 어른에게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지점까지 보여준다. 삼촌이라는 어른의 무자비함을 보며 정당한 보수는 주지 않더라도 인격적 대우는 해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고, 베르마 선생의 학생 도시락을 먹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과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시락을 싸오지 않을 거면 학교에 오지 말라고 스탠리를 몰아치는 모습에서 부끄러움마저 느껴졌다.
영화는 많은 인도영화처럼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음을 우리는 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또 한 명의 스탠리가 숨어있을까?"로 시작되는 영화 속 노랫말처럼, 여전히 결식아동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아동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볼 기회를 준 이 '스탠리의 도시락'은 귀여운 학생들이 나오는 영화로만 생각하고 본 나에게는 큰 반전이 있는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다음의 자막이 나온다.
"이 영화는 토요일과 방학 중에 이루어진 연극영화반 수업을 통해 촬영되었다. 각 촬영은 두 번의 휴식 포함 5시간을 넘기지 않았고 아이들은 단 하루도 학교에 빠지지 않았다."
또
"인도에는 천이백여만 명의 미성년 노동자가 있으며, 가족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아이들은 더 많다고 추정되며 이를 포함한 인도의 미성년 노동자 수는 5천 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렇게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시작되는 작은 움직임. 그것이 점점 많은 곳으로 퍼져나가길 기대해 본다.
전 세계는 생각지 못한 바이러스에 벌써 2년째 신음하고 있다.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일상으로 언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다.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사람들은 이웃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가 줄어들고 점점 무기력해져간다.
그러나 계속 이렇게만 있을 수는 없다. 이제 주위를 둘러보자. 그리고 우리는 좀 더 미래세대인 아이들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더 가져보는 한 해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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