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으면 좋은 책: 로버트 휴 벤슨, <세상의 주인>;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마르코 골도니, <한나 아렌트, 정치와 법>
다시 읽는 <1984>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지만, 친구 따라 책 읽기도 가능하다. 문학평론을 하는 친구가 기리노 나쓰오의 〈일몰의 저편〉(북스피어, 2021)에 대해 쓰면서 조지 오웰의 〈1984〉를 함께 비교했다는 말을 듣고, 기리노 나쓰오의 신작과 오웰의 1949년 작 〈1984〉(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를 같이 읽었다(친구의 글은 격월간지 〈릿터〉 2021. 12-2022. 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84〉를 처음 읽은 때가 중학교 3학년이었으니, 무려 45년 만의 재독이다. 그런데 지금 읽어보니 그때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을 것 같지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인 성 정치다. 가상 국가 오세아니아에서는 당원들 간의 성행위는 물론 사랑마저 금지한다. 당원들 사이의 모든 결혼은 해당 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둘 사이에 애정이 존재한다”라고 판단되면 결혼 승낙이 거부된다. 오세아니아의 유일당인 영사(英社·Ingsoc)의 고급 당 간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오르가슴마저도 없앨 거야. 이를 위해 우리의 신경과 전문의들이 지금도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네. 당을 향한 충절 외에는 다른 어떤 유형의 충절도 허용되지 않아. 빅브라더에 대한 사랑 외에는 다른 어떤 유형의 사랑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야.”
성본능의 충족은 빅브라더에 대한 충성을 약화시키고 적에 대한 분노를 순화하기 때문에 근절되어야 한다. 아마도 오웰은 빌헬름 라이히의 1933년 저서 〈파시즘의 대중심리〉(현상과인식, 1986)를 읽거나 그의 주장을 소문으로 들었을 것이다. 라이히는 파시즘을 가능하게 하는 관료주의의 기층과 거기에 순응하는 대중의 심리를 분석하기 위해 성 정치를 탐구했다. 그는 “성의 긍지는 개인적 자의식의 토대”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든 공산주의 국가든 어린이 때부터 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을 도덕적으로 억압한다면서 “이 금지는 인간의 반역적 힘을 무력하게 만든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인 윈스턴과 줄리아가 보여주었듯, 성이 철저히 억압된 곳에서는 사소한 것에 그치고 말 일상적 성마저 체제 저항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즉, 성 정치를 강제하는 국가는 되로 주고 말로 받죠.
하지만 이런 지식이 다시 읽은 〈1984〉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해준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을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하려면 이 소설에 덧씌워져 있는 명성을 벗겨내야 한다. 흔히 이 작품은 ‘전체주의에 대한 풍자’나 ‘전체주의에 대한 우화’로 고평을 받고 있는데, 이 소설에는 전체주의가 없다. 전체주의란 ‘단 한 명의 열외’도 허용하지 않는 통제 사회라고 정의되며, 통제를 받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강제수용소행 열차가 준비되어 있다. 이런 정의를 〈1984〉에 적용하려는 사람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선거가 없기 때문이다
오세아니아의 인구는 3억명이다. 위대한 동지 빅브라더 밑에는 내부 당원(고급 당원)이 있고, 그 숫자는 600만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들은 오세아니아 총인구의 2%에 해당한다. 내부 당원 밑에는 외부 당원(일반 당원)이 있는데, 내부 당원이 국가의 두뇌 역할을 담당한다면 외부 당원은 그들의 수족이다. 외부 당원 밑에 우매한 대중이 있는데 통상 ‘프롤’이라 불리는 이들의 숫자는 총인구의 85%에 이른다. 오세아니아는 상층 2%와 중상층 13%, 그리고 하층계급 85%로 이루어져 있다.
〈1984〉에 대한 널리 알려진 명성은 오세아니아의 전체 국민이 빅브라더의 통제와 감시를 받으며 연일 세뇌당하고 있다고 오해하게 만들지만, 오웰은 그런 소설을 쓰지 않았다. 이 소설의 발표와 함께 전 세계 독자를 깜짝 놀라게 했던 텔레스크린(요즘의 CCTV)은 15% 영사 당원들의 집에만 설치되어 있으며, 프롤의 가정과 그들의 거주 구역 그리고 그들이 모이는 술집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집 안과 사무실은 물론이고 광장과 거리에서 24시간 가동하는 텔레스크린은 주로 당원을 감시하는데, 당의 선전이 나오는 시간에 낙천적인 표정을 짓지 않는 당원은 ‘표정죄’로 처벌될 수 있다.
15%의 당원은 이혼이나 혼외정사를 할 수 없으며, 향수와 화장품은 물론 하이힐과 스타킹이 금지된다. 당원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해야 하고 혼자 노래를 부르거나 산보하는 것조차 중대한 위법이다. 자유시장(암거래 시장) 출입도 금기 사항이며 필기구나 공책을 갖는 것 역시 위험한 행동이다. 당원들은 욕이나 낙서와 같은 감정 배출도 할 수 없다. 반면 프롤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도적적인 사항에 대해서 그들은 조상들의 도덕률을 따르도록 허용되었다. 성적 문제에 있어서의 당의 엄정주의는 그들에게 강요되지 않았다. 간통도 처벌되지 않았으며 이혼도 허락되었다. 프롤들이 필요성을 느끼거나 원하기만 한다면 종교 활동도 가능했다.”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하층계급이 노동에 충실하기만 바랄 뿐, 그들에게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입당마저 원천 불허된다. 영사는 프롤을 교육시키지 않으며 산아제한을 지도하지도 않는다. 국가는 그들이 무지하면 할수록, 또 많은 자녀로 인해 가난이라는 조건 속에 허덕일수록 오히려 지배하기 좋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오세아니아의 문화체육관광부(진리부)에는 포르노 소설을 창작하는 전담 부서가 있는데 여기서는 〈여학교에서의 하룻밤〉 같은 제목의 포르노물을 대량으로 만들어 프롤들에게 공급한다. 이 제작물 역시 당원들에게는 금지되어 있는데, 국가에서 포르노물을 제작하는 이유가 하층계급의 우민화에 있기 때문이다. 프롤을 동물로 취급하는 영사는 멋진 슬로건을 만들었죠. “프롤들과 동물들은 자유롭다.”
오웰은 어쩌다가 85%에게 자유를 선사해버린 불완전한 전체주의 국가를 창조하고 말았나. 빅브라더가 15%의 당원만 관리하고 85%의 하층계급을 방치하는 이유는 선거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중이 관리받는 이유는 그들이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아니라면 지배층은 형식적으로조차 대중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비록 작중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지만, 오웰은 전체주의 국가가 85%를 방치하는 이유를 나름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주의 국가도 전체주의 국가를 점점 닮아가지 않는지요. 15%나 그에 근접한 상층계급 속에서 나온 후보자 가운데 한 명을 뽑는 선거, 85%를 위한 의제가 사라진 선거가 오세아니아의 과두제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요.
장정일(소설가)의 독서일기, CULTURE & LIFE IN, 시사IN, Vol.748, pp.74-75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