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앎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 이민우(유스티노, 홍보실장, 성모기사 위원장)님의 <성모기사>글을 갈무리 함
***영화 포스터, 이형표 감독 "서울의 지붕밑(1964)"
**** 교황청 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성 지침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2017)",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축성/봉헌 생활과 여전히 제기되는 도전
영화가 시작하면 다양한 앵글로 서울의 전경을 보여준다. 복잡한 도시의 풍경을 보여주는가 하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한옥을 보여준다. 옛것과 새것의 명확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는 것. 이 영화는 그 시작부터 '주제 의식'이 명확히 드러난다. 배경으로 흐르는 내레이션을 들어보면 더욱이 그렇다.
"서울의 지붕 위에 아침 해가 솟으면 오늘도 새로운 시대와 낡은 시대가 어깨를 겨누고 사는 이 골목 안에 서울의 희한한 꿈과 사랑과 웃음과 눈물이 살아서 숨결 짓는다."
영화 내내 이런 구시대와 신시대의 대립을 계속 보여준다. (동네에서 오래된) 한의사 '학규'는 젊은 양의사인 '두열'을 대놓고 싫어한다. 환자를 빼앗기고 있다 생각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딸 '현옥'이 '두열'을 사랑하는 것을 결사 반대한다. 그런 두열은 현옥을 사랑하기에 학규의 질투와 시기를 최대한 이해하고 받아들여 준다. 그렇게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
사실 대립이라기보다는 '꼰대 학규'가 꼬장부리는 것을 두열이 신사적으로 응대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가 이렇게 신구의 대립을 주제로 하고 있어 긴장감 있는 드라마일 것 같지만 '거침없이 하이킥' 스타일로 코믹 에피소드의 나열을 보여주고 있다. 그 당시(60년대)와 지금(21c.)의 가치관이 많이 변했다 하더라도 웃으면서 넘길 수만은 없는 장면들이 많다.
또한 영화 속에는 '잘못된 행동' 뒤에 따르는 응징, 즉 권선징악의 기본 구도를 따르고 있는데, '요즘 영화'가 선과 악의 구별을 모호하게 하고 윤리적인 책임에 대해선 자유로운 것이 대세인 것과는 많이 대조된다.
고전영화의 미덕이랄까 권선징악을 명확히 보여줌으로서 관객으로 하여금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듯하여 마음에 안정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실제의 삶과 세상은 전혀 이와 같지 않다. 선과 악이 섞여 있고 어떤 것이 선인지 악인지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우며, 서로 다른 가치관들이 대립하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삶과 세상 속에서 단순하고 명쾌한 권선징악을 보여주면 속이 후련하며 시야가 밝아지는 느낌마저 드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는 다음의 성경 말씀으로 연결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 5,38) 그리고 바로 이어오는 말씀,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39절)
'학규'로 대표되는 구세대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옛것을 고집하지만, 결국 '두열'로 대표되는 신세대를 받아들이고 변화할 수밖에 없다. 옛것만을 고집하고 지키려 하다가는 자신을 포함하여 가족 모두가 불행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학규의 선택'은 강요된 것일 수 있지만, 강요라기보다는 밀려오는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옛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핵심 가르침인 사랑의 이중 계명은 옛것이라고 할 수 있는 율법 속에 이미 있던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핵심을 놓치고 주변 것들에 목숨을 거는 당시의 율법 학자들을 비판한 것이었지 율법 그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단 두살 차이도 세대 차이가 난다고 하는 세상이니...이렇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옛것의 소중한 가치를 간직하고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의 자세가 필요하다.
*올 한 해 수도회 연피정 지도하신 신부님은, 매 피정강의 시작 때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의 내용 중에서 ('수다떨자'고 말은 하셨지만) 숙고하고 싶은 문항들을 기도로 읽어주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교부들은 각 수도회가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카리스마를 새롭게 '살아가라'고 쇄신의 '주연의 자리'를 내 주었다. 이에 봉헌 생활회는 공의회 문헌의 <교의 헌장 >과 수도 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 반포 50주년을 맞아 공의회 이후 축성 생활이 걸어온 여정을 돌아보며, 오늘날에도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이 무엇인지 살펴왔다.
수도회성 총회와 축성 생활자들이 로마 교황청에 여러차례 모여 작업한 성찰의 결실인 지침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는, (<복음의 기쁨>에서 교황이 권고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안위(너무 오래되어 안락함마저 느낄 지경인 자신의 안.전.한 둥지)를 떠나 용기를 갖고 복음의 빛이 필요한 모든 (새롭고 너무나? 젊어서 잡풀밖에 보이지 않는) '변방'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따르도록 요청" 하고 있다.
여타 세상처럼 축성생활 역시 오래됨과 새로움, 생각과 실재 사이 등 양극의 긴장이 존재한다. 오래됨은 시간 속에서 죽어가고 새로움은 무시로 태어난다. 실재는 그냥 있지만 생각은 계속 다듬어진다. 새로운 생각이 오래된 실재에서 동떨어지지 않으려면 그 둘 사이에 지속적인 대화(synodalitas 시노달리타스)가 있어야 한다.
축성 생활은 공의회 이후 일어난 '쇄신에 적응하는' 폭넓고도 풍요로운 여정을 걷고 있지만, 여전히 '결단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직면해야 할 여러 도전 앞에 있다. 지침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는 적합하지 않은 관행을 살피고, 가로막힌 진행 과정을 가리켜 주며, 구체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축성 생활자들의 복음적 생활 양식을 제대로 지탱해 주는 '관계'와 '통솔'과 '양성'의 구조에 대하여 의문-질문을 제기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는, 담대하게(parrhesia) 성령께서 끊임없이 당신 교회에 주시는 새 포도주를 잘 보존할 부대가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것이며, 장/단기적으로 구체적 활동 방안을 마련하여 변화의 걸음을 시작하라고 우리를 다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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