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맞서는 예수님의 제3의 길_비폭력 저항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마태 5.39
*우리가 성경을 얼마나 ‘상투적’으로 읽는지 반성하고, 잠깐이라도 “오른쪽 뺨”에 머물러 예수의 비폭력 저항에 대하여 숙고해보고자 박은미 연구원의 글을 갈무리하였다.
왜 오른쪽인가?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의 오른쪽 뺨을 치는가?… (통상~) 오른손으로 상대의 오른쪽 뺨을 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른손 손등으로 치는 방법이다. 즉 그 의도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치욕을 주기 위함이며, 그 ‘꼬락서니’를 제대로 알게 하기 위함이다. 당시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같은 신분의 사람을 손등으로 치지는 않았기 때문에 만일 그랬다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만 했다. 그러나 하급자들을 손등으로 칠 경우에는 벌금이 없었다.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하급자들을 훈계하는 통상적인 방법이었다. 주인은 종들을, 남편은 아내를, 부모는 자녀를, 남자는 여자를, 로마인은 유대인들을 손등으로 때렸다. 이것은 불평등한 관계들로서, 각각의 경우 보복을 한다는 것은 자살과 다를 바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굴복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청중들이 누구였는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경우에서 예수님의 청중들은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고소하거나 강제 노동을 부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피해자들이었다. 신분, 종족, 성별, 나이, 지위 등의 위계적 질서와 로마제국의 점령으로 인해, 그들이 당하는 치욕을 견딜 수밖에 없으며, 비인간적 대우에 대한 분노를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이미 치욕을 당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왜 왼뺨을 돌려대라고 가르치시는가? 왜냐하면 왼뺨을 돌려대는 행동은 압제자에게서 모욕할 수 있는 힘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왼뺨을 돌려대는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좋다. 다시 때려 봐라. 네가 처음 때린 것은 네가 의도했던 효과를 얻지 못했다. 나는 네가 모욕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나는 너와 똑같은 인간이다. 너의 지위가 높다고 해서 이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너는 나의 품위를 떨어뜨릴 수 없다.”
이제 때린 사람은 몹시 난처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손등으로 칠수가 없다. 이미 아무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왼손으로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일 그가 (오른손) 주먹으로 친다면 그는 스스로 상대방을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손등으로 치는 것의 요점은 신분계급 제도를 강화시키고 불평등을 제도화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왼뺨을 돌려댄 사람을) 매질하도록 명령한다 해도, 그의 주장은 이제 취소할 수 없게 되었다. 즉 그 억압자는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이 하급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강자는 약자를 비인간화할 수 있는 힘을 빼앗긴 것이다. 이런 대응 방법은 수동성과 비겁함을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에게 도전하는 행동이다.
**월터 윙크(1935~2012), 예수와 비폭력 저항, 32~34pp.
-월터 윙크의 담론은 비폭력 평화주의를 강조한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깊이 성찰하도록 돕는다. 폭력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대응으로는 ‘도망치기(flight)’와 ‘맞서 싸우기(fight back)’를 든다. 그런데 월터 윙크는 비폭력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도망치기’도 ‘맞서 싸우기’도 아닌 제3의 길이라고 주장한다. 비폭력 저항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태도를 가장 명징하게 드러낸 성경 구절은 마태오 복음서(5, 38~41)에 나온다.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발행 계간지 품(156호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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