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사랑의 노동〉 에바 페더 키테이 지음/김희강·나상원 옮김/박영사 펴냄/ 정가 20,000원
꽤 오래 죽음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레 돌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사가 아닌 한 사람은 누구나 죽기까지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하다. 통계조사에 따르면 평균수명이 80세라 할 때 10~15년은 남에게 의지해 산다. 큰 병이 들지 않았어도 늙으면 남의 손 빌릴 일이 많다. 요양시설을 찾는 이유다. 나 역시 노쇠하면 요양시설에서 말년을 보내게 될 터, 돌봄의 형태와 질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돌봄에 관한 책은 사회복지 차원에서 돌봄노동을 다룬 정책연구 서류, 홀로 육아나 간병을 떠맡은 이들이 돌봄노동의 고단함과 중요성을 토로한 에세이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최근 들어 다양해지는 추세다. 몇 해 전 김희강·나상원의 공동 번역으로 조앤 트론토의 〈돌봄 민주주의〉, 버지니아 헬드의 〈돌봄:돌봄윤리〉, 에바 페더 키테이의 〈돌봄:사랑의 노동〉 등 돌봄에 관한 주요 저작들이 소개되면서 목록이 풍부해졌고, 얼마 전엔 각자의 분야에서 돌봄 문제를 연구하던 학자 다섯 명이 의기투합해 돌봄 공백을 초래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보편적 돌봄의 필요성을 선언한 〈돌봄 선언〉이 출간되었다. 모두 돌봄에 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해 필요한 책들이다.
나는 이 중에서 미국 철학자 에바 페더 키테이가 쓴 〈돌봄:사랑의 노동〉을 골랐다. 나온 지 20여 년이나 된 구간이지만 지금도 윤리학·사회복지학· 장애학·여성학·정부론 등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저작이다. 유명한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미국의 법과 정책을 변화시키는 데 강력한 철학적 논거를 제시했으며, 좋은 철학은 실제 정치에 도움이 된다는 걸 보여주었다”라고 높이 평가한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끈 것은 저자가 중증 지체장애 딸을 가진 어머니라는 사실이었다. 돌봄을 자기 문제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철학자이니 현학적인 말만 늘어놓진 않겠구나 싶었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여성, 평등, 그리고 의존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돌봄과 여성을 연결 짓는 건 이해가 됐지만 돌봄과 평등의 연결고리는 알 수 없어 궁금했다. 궁금하면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읽었다.
이제까지 돌봄은 주로 여성이 전담해왔다. 육아는 물론 노인이나 환자의 수발도 어머니, 딸, 며느리, 하녀들이 도맡았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돌봄노동이 사회화된 이후에도 이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성차별이 온존한 사회에서 이는 돌봄노동의 폄하로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아동양육, 간호, 간병, 노인요양 같은 돌봄노동을 여전히 하나의 전문 직업이 아닌 ‘여자가 하는 집안일’ 정도로 여기며 저임금과 차별을 정당화한다.
키테이는 성평등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차별을 시정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의 말처럼 성평등을 내세운 여성운동으로 서구 사회에서 형식적인 차별의 장벽은 상당 부분 철폐됐지만 실질적인 평등은 아직도 미흡하며 무엇보다 여성 내부의 불평등은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선진국 중상층 여성의 사회 진출은 그로 인한 돌봄 공백을 자국 내 빈곤 여성과 개발도상국 빈곤 여성들의 값싼 돌봄노동이 메웠기에 가능했다. (한국에 조선족 여성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즉 중상층 여성이 누리는 평등과 자유는 성평등의 결과라기보다 (인종적·민족적 차별을 동반한) 빈곤 여성에 대한 불평등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엄마의 아이다"
키테이는 ‘인간은 독립적이고 자율적 존재’라는 전제 아래 개인의 평등과 자유를 주장하는 자유주의 정치사상을 고수하는 한 이 같은 불평등과 차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전제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자립적인’ 인간은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허구이며 사회는 이런 개인들의 자발적 결사체가 아니다. 실제 인간은 의존적 존재다. 근 20년간 의존기를 거쳐야 한 사회의 성원으로 독립할 수 있고, 키테이의 딸처럼 날 때부터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 있는가 하면 사고로 그런 상태가 되기도 한다. 설령 장애 없이 건강하다 해도 노년이 되면 또다시 긴 시간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상호 의존의 정치경제학을 넘어, 의존은 인간 생존에 불가결한 존재조건이다(이것을 저자는 ‘인간 의존의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사실이 만인의 평등이라는 또 다른 사실의 근거가 된다. 저자는 그것을 “우리 모두는 엄마의 아이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자율성, 합리성 같은 개인의 속성이 아니라 ‘엄마의 아이’라는 모든 사람의 유사성이 인간을 평등한 존재로 만든다. 따라서 ‘엄마 품 같은 돌봄’은 인간 사회의 당연한 요구요 권리이며 정의로운 사회의 조건이다.
키테이는 이러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둘리아에 근간을 둔 복지정책을 제안한다. 둘리아란 산모가 아이를 돌볼 때 산모를 돌보던 그리스 시대 둘라(doula)에서 나온 개념으로, “우리가 생존과 성장을 위해 돌봄이 필요했듯이, 돌봄노동자를 포함한 다른 사람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필요한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의존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는 시혜적 복지 관념과는 다르다. 돌봄의 공공윤리에 기반한 복지는 의존을 사회적 조건으로 인정하며, 의존인과 돌봄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존인과 의존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 당신이 누구든, 성별이 무엇이든, 얼마나 똑똑하고 대단한 인물이든, 돌봄의 책임과 권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돌봄은 선의가 아닌 정의다.
*시사IN, CULTURE & LIFE IN_김이경의 여여한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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