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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코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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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라합의 선택

  • 말씀
  • 2021-09-10 10: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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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경/교회, <품>n.155

**라합의 선택, 생존의 기로에서, 방영미, 가톨릭평론 편집위원,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구약성서에 나오는 라합은 예리코 성의 창녀로 동족을 배신하고 적국인 이스라엘 편에 서서 자신의 가족만 살아남게 한 여성이다. 그래서 라합에 대해 평가하기가 참 어렵다. 성서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기록된 것이라 그녀를 긍정적으로 묘사하지만, 예리코 주님의 입장에서 보면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다. 다음 이야기는 라합을 주인공으로 당시 상황을 각색한 것이다.

 

예리코 사람들은 흉흉한 소문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집단으로 탈주한 노예 민족이 예리코를 노리고 쳐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었어요. 예리코는 유서가 깊은 오래된 도시로 이곳 정착민들은 조상 대대로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비옥한 토양과 마르지 않는 샘물, 온갖 열대과일로 풍족한 생활을 누렸으며, 일조량도 넉넉해서 주거지도 쾌적했어요. 이렇게 좋은 도시에서 전쟁이라니, 긴 시간 평화에 익숙해진 예리코 사람들은 어떻게 전쟁에 대비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했습니다.

라합은 외지인 출입이 잦은 예리코 성 내 입구에서 여관을 운영하며 살았습니다. 주변에 다른 도시가 없는 덕에 먼 길 가는 상인들이나 여행객들이 예리코에 들러 쉬었가 겄거든요. 그래서 예리코는 여관들이 잘 되었습니다. 특히나 성문 바로 옆에 위치한 라합네 여관은 항상 손님들로 북적였습니다. 오늘도 라합은 손님맞이를 위해 객실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었어요. 딸랑딸랑, 여관 현관문을 열고 손님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며칠 묵어갈 건데 방 있습니까?" 억양이 특이하고 발음이 어눌한 사내가 물었어요.

  "처음 오시는 분들인가 봐요. 2층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예리코 지역의 특성상 단골손님이 많은 탓에 라합은 처음 보는 그들이 수상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2층 빈 객실로 그들을 안내했습니다. 장사용 물건도 없고 짐도 변변찮고, 행색은 초라한데 눈빛은 강렬한, 이상하기 그지없는 조합에다 일행 간에 긴장감마저 느껴졌거든요. 라합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두 명을 옥상과 바로 연결되는 2층 끝방에 묵도록 했어요.

예리코인들은 전쟁 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요. 이집트는 재앙으로 폐허가 되었고 이집트인 장자들은 죄다 죽었으며, 막강한 군대마저 이스라엘 노예들을 뒤쫓다가 바다 속에 수장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어요. 그들을 상대로 과연 예리코가 버틸 수 있을까, 그건 가당치도 않아 보였습니다. 라합은 고민 끝에 결심을 굳힌 뒤 2층 끝방 객실로 갔습니다. 이스라엘 정탐꾼들은 급작스러운 라합의 등장에 놀라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당신들이 누군지 알아요. 지금 당장 나를 따라오세요. 곧 왕이 보낸 추격대가 우리 집에 들이닥칠 거예요."

라합의 다부진 말에 이스라엘 정탐꾼 두 명은 옥상으로 피했습니다. 옥상에는 아마 줄기들이 가득 널려 있어서 일단 급한 대로 그 속에 숨었어요. 딸랑딸랑,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라합은 쏜살같이 내려갔습니다. 예리코 왕이 보낸 추격대였습니다. 라합은 방금 낯선 외지인들이 성문 밖으로 나갔다고 거짓말로 둘러댔어요. 그 말을 믿고 추격대가 서둘러 촟아가 버리네요. 이스라엘 정탐꾼들은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이윽고 다시 라합이 이들에게 나타났습니다. 라합은 결기에 찬 표정이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적을 숨겨주는 행위는 목숨을 건 행동이니까요.

  "내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자매, 그리고 그들에게 딸린 모든 이를 살려 주고 우리의 목숨을 죽음에서 구해 주십시오."(여호 2, 13)

 

어떤가? 적에게 빌붙어 목숨을 구걸하다니, 그건 너무 파렴치하고 비겁한 짓이야!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의 명분은 일개 소시민에겐 뜬구름에 불과하다. 따라서 평소 권리 없이 의무만 이행하는 백성들에게 특혜를 누리는 고위층과 동등한 의무를 요구할 순 없다. 더구나 가진 것 배운 것 적은 사람일수록 위험 사회에선 더더욱 살아내기 힘들다.

그런데 오늘날 인류도 위험 사회를 살고 있다. 코로나에, 환경위기에, 경제문제에, 그래서인지 도처에 억울하고 분노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런 때에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도는 무엇일까, 어렵고 또 어렵다.

 

***아프카니스탄 탈레반 재집권이 바로 코앞. 국경 봉쇄 전에 대한민국 수송기에 태워 데려온 '현지 조력 주민'들에게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이며 '난민'이라 부르지 않는다. 우리곁을 찾아든 그들은 예리코의 2층 여관방, 생존의 기로에 서서 삶을 선택한 오늘날의 라합-특별 기여자, 특별 공로자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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