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시기(Season of Creation)에 대한 이해
1. 역사
1989년 동방정교회 드미트리오스 1세 총대주교는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하였다. 그리고 2001년 유럽 교회연합에서 이 날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받아들였다. 2015년 로마 가톨릭 교회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결정에 따라 매년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며, 생태학의 수호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인 10월 4일까지를 ‘창조시기(Season of Creation)’라는 이름으로 생태위기 극복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행동한다.
2. 전례 거행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는 교회 공동체를 위한 기도 예식문을 매년 제공하고 있다. 예식은 지역교회의 사정에 따라 9월 1일부터 10월 4일 사이에 거행할 수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에서는 매년 예식문을 번역하여 전 신자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3. 한국천주교회의 행동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전국 교구 환경사목 기구들은 창조시기 동안 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기념 미사와 교구 행사, 사목 자료 보급을 통해 신자들이 생태계 보호와 회복에 동참하도록 권고하고 계획한다.
4. 창조시기의 주제
2019년: 삶의 관계망 (Web of Life)
2020년: 지구를 위한 희년(Jubilee for the Earth)
2021년: 모두를 위한 집, 하느님의 집을 새롭게하기?
(A home for all?, Renewing the Oikos of God?)
5. 홍보 동영상
공식 홈페이지: https://seasonofcreation.org
2018년: https://www.youtube.com/watch?v=dQA4fAqiFQ4&t=1s
2019년: https://www.youtube.com/watch?v=30kRHMfr12g
2020년: https://www.youtube.com/watch?v=8I4VjeVHY-k
2021년: 제작 예정
5.1 2021년 창조시기 주제 설명
2021년 창조시기의 주제는 “모두를 위한 집, 하느님의 집을 새롭게하기?”입니다. 매년 교회일치운동 운영위원회(ecumenical steering committee)에서는 창조시기의 주제와 목적에 대해서 안내책자를 제공합니다. 올해 2021년의 주제는 “모두를 위한 집, 하느님의 집을 새롭게하기?”입니다.
시편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것이라네,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시편 24,1). 이 시편 찬가의 핵심에는 두 개의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모든 생명체가 우리 지구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전체 공동체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지구 공동체 대한 그리스어 단어는 ‘오이코스(oikos)’입니다. ‘오이코스’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찬미받으소서 회칙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공동의 집을 설명하는 ‘oikoumene’, 혹은 ‘ecumenical‘이라는 단어의 어원입니다.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란 단어는 희랍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유래합니다. 이 말의 어원은 oikos(집)인데, 이로부터 oikonomia(집안 살림살이 = managing of the household)란 말이 나왔고, 이로부터 economy(경제, 그리고 신학에선 ‘경세’)와 ecology(생태학)란 말이 나왔습니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 세상”(the whole inhabited world)입니다. 신약성경에선 이와 같이 ‘세상’이라는 의미로 15회 가량 사용되었고, 2-3세기에 이르면 이 용어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 세상” 속에 지역별로 흩어져 있는 세계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4세기에서 5세기 동안에는 지중해 세계의 보편교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하여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처음으로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제1차 ‘에큐메니칼 공의회’(세계 공의회, 보편 공의회)라 부르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공동체인 지구는 하느님의 것이며, 사랑하는 각 피조물은 이 공동의 집에 속해 있습니다.
오이코스(집)이라는 의미 안에서 올해의 주제를 살펴볼 때, 우리는 지구의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통합적인 관계의 그물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생태학(ecology)이라는 단어는 이 사랑받는 공동체의 균형을 유지하며 생명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동물과 식물, 그리고 무감각 유기체와 광물 등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각각의 피조물 모두는 생태계 안에서 생물다양성의 회복과 지구의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꼭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인간은 지구 공동체 안에서 올바른 관계에 속해있습니다. 우리는 지구의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우리 공동의 피조물과 땅에 의해 보살핌을 받습니다.
인간관계는 또한 생태학적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경제적(Economic, oikonomia),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인 관계는 피조물의 균형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만들고 사용하고 생산하는 모든 것들(광물, 식물, 동물 등)은 지구에서 기원합니다. 수많은 에너지와 물질을 소비하는 우리 인간의 습관은 스스로 치유하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지구 회복력에 영향을 미칩니다.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관계들은 인류 가족과 하느님의 집에 속한 이들에게 훨씬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창세기 2장 15절(“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공동의 피조물 가운데에서 인간에게 하느님의 집을 돌보는 특별한 소명을 주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정의로운 방식의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면, 믿음과 이성과 지혜가 함께 필요합니다. 우리는 믿는 이들로서, 죽어 있는 피조물의 청지기가 아니라,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지구 공동체의 청지기임을 기억하면서 시편저자와 함께하게 됩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은 믿음 안에서 주어진 선물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을 지배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온전히 관리하기 위한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생명을 지키는 상태를 어떻게 가장 잘 보존할 수 있을지 분별할 수 있고, 우리 공동의 집의 생태학적 한계에 기초한 경제적, 기술적, 정치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건축물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지혜를 통해 말씀과 영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시와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선주민들의 전통들과 자연 시스템을 주의 깊게 보존할 수 있습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우리 인류는 지구의 한계 보다는 시장 논리에 따라 우리의 삶과 경제발전만을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거짓 논리는 하느님의 집을 이용하고, 창조를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만듭니다. 현재 인간의 이익만을 위한 토지, 식물, 동물, 광물의 착취는 기후갈등, 손실과 피해로 인해 인간을 포함한 수백만 종의 서식지의 손실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재 인류세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생태적, 사회적 붕괴는 기후위기와 생태적 불안정성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지혜는 우리가 지구와 사람들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녹색 생명의 경제와 정의로운 정치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해답과 경로를 찾도록 준비시킵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영이 끊임없이 지구의 모습을 새롭게 하신다는 신뢰를 줍니다. 이 같은 희망의 지평 안에서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성소는 하느님의 동산을 잘 보존하고, 가꾸는 본래 인간의 소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인류가 살고 있는 온 세상을 새롭게 하고, 모든 피조물을 위한 서식지를 보존하며, 모든 피조물 사이의 정의로운 관계를 회복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번 창조시기의 전례를 거행하면서, 교회일치운동에 참여하는 그리스도교 가족들은 모든 가정과 사회에서 회개하고, 정치, 사회, 경제적 시스템이 정의롭게 변화되며, 우리 공동의 집에 생명을 주는 생태학적 한계를 존중할 수 있도록,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삶의 경제로 재편할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이번 ‘창조시기’에서 교회의 일치를 더욱 새롭게 하고, 우리가 세례 때 받은 부르심 안에서 모든 피조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번영하고 하느님의 집을 새롭게 하는데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6. 창조시기 로고 설명: 아브라함의 천막: Abraham's Tent
올해 창조시기의 로고는 “모두를 위한 집”을 상징하는 아브라함의 천막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느님의 천사로 보이는 세 명의 낯선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들의 천막을 내어줍니다(창세기 18). 모두를 위한 집을 마련한, 그들의 엄청난 환대는 엄청난 축복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천막은 우리 공동의 집인 하느님의 가족 안에서 모든 피조물들의 터전을 보존하는 근본적인 환대의 행위로써, 모든 피조물을 보호해야 하는 우리 일치운동의 소명을 상징합니다.
이번 창조의 시기에 교회의 정원이나 녹지 공간에 소외된 모든 존재를 위한 환대의 표시로 아브라함의 천막을 치는 것을 고려해보십시오. 각각의 공동체들은 주변에 있는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초대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피조물의 일부를 천막으로 가져와서 너와 함께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천막은 또한 창조시기를 지내는 동안 모두를 위한 집을 마련하려는 공동체의 의도를 상징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천막은 여러 방면으로 열려 있을 것 같기 때문에, 지나가는 이들에게 모두 환영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천막은 대화를 상징하기도 하며, 특히 아브라함으로터 시작된 유일신 종교들 사이에서 그렇습니다. 오늘날 이는 곧, 대화와 식별을 통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데 종교간, 학제간에 요청되는 표시입니다.
아브라함의 천막은 피난처나 보호소를 나타냅니다. 이는 곧 우리를 노숙자, 난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실향민들을 연결시켜줍니다. 시편 84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의 하느님, 당신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마련하고, 제비도 제 둥지가 있어 그곳에서 새끼들을 칩니다”(시편 84,4).
천막은 또한 단순함의 상징이다. 특히 젊은이들 가운데서 텐트와 가방은 필수적이며 기본적이며 자신의 상황에 맞게 살아가고, 이 세상에서 가볍게 여행하는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 유목민이나 반유목민처럼 아브라함과 사라는 대지의 소중함에 의존하며, 땅의 리듬을 존중하고, 신뢰 속에서 사는 것이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천막은 우리가 이번 생애를 살아가면서 우리 인류의 발자국이 지구 위에서 가벼워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고마운 순례자의 표시이다.
요한복음 1,14절에서 우리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라고 읽었다. 천막의 상징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사랑의 표지로서 어떻게 우리 가운데 사셨는지를 상기시켜줄 수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며, 그것은 우리 공동의 집을 보존하고 유지함으로써 이웃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준다.
6.1 개인과 공동체의 실천
* 기도: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것에 대하여 찬미하기, 지구와 우리의 이웃이 고통을 겪도록 한 우리의 탐욕과 잘못을 회개하기, 기후 대이변에 취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전구하기, 우리가 지닌 모든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리기 등.
* 실천: 지구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행동을 따져보고, 개별적으로 그리고 경배 공동체로서 새로운 실천을 약속하기.
* 촉구: 기후 정의와 녹색 경제로의 이행이 코로나19 경제 회복 계획의 일부임을 분명히 알도록 적극적으로 각국에 장려하기.
* 행동: 우리나라 정부가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 글래스고)에 제출할 탄소중립시나리오를 검토하고, 국가목표(NDC)를 의욕적으로 수립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행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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