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째 뭔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머리를 쥐어박으며 ‘내가 왜 원고 청탁 요청에 오케이를 했을까?’ 자책하는 중이기도 하다. 소설과 희곡이 좋아 문학을 전공했지만, 대학 시절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된 것은 “나는 문학적이지 않다”는 충격적인 사실뿐인데, 어쩌자고 글을 쓰겠다고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이런 찰떡 같은 속담을 남겨주신 조상님들께 감사드린다.) 어찌하겠는가, 이미 한 약속을 무를 수는 없으니, 내가 뱉은 말의 무게를 절감하며 무엇이든 써내려가는 수밖에.
말의 무게. 문학을 공부하며 확실히 배운 게 하나 있다면 말의 무게다. 입말(구어 口語)이든 글말(문어 文語)이든 발화된 모든 말은 저마다의 무게를 지닌다. 한 번 뱉어내면 주워 담을 수 없는 입말과 달리 글말은 퇴고를 거치기에 조금 형편이 낫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영원히 박제”되어 남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어떤 경우에도 말의 무게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말을 하기/쓰기 전에 몇 번이고 생각을 다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계 올림픽 기간 동안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숏컷과 페미 논쟁이 올림픽 폐막 후에 해외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영국 신부 하나가 해당 기사의 링크를 보내주며 “이게 진짜냐?”라고 묻는데, 말문이 턱 막혔다. 생각의 정련 없이 뱉어낸 문장 몇 개가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을 ‘쓰니’(글쓴이를 가리키는 은어)는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인터넷이 보급되고 각종 소셜 미디어와 커뮤니티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요즘, 쉽게 올릴 수 있는 만큼 생각은 얕아지고 뱉어내는 말은 거친 경우도 많기에 다시 한번 말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문제가 되면 삭제하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잘 생각하시라. 누군가는 당신의 그 말을 캡쳐해 영원히 박제한다니깐? 그리고 그게 한국을 벗어나 세계로 돌기도 한다니깐?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이제는 철 지난 이론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참으로 여겨지는 말이다. 요즘의 우리 사회에 회자되는 말을 듣고/읽고 있자면 우리 사회의 사고가 서로 가르고, 베고, 찌르는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서로 품고 싸매 주고 지켜주는 말들이 풍성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부디,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그런 말들을 풍성히 내뱉을 수 있기를.
이종원(바오로) 신부
문학과 신학을 공부했지만 정작 지식은 일천하여 매우 슬픈, 그럼에도 마음만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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