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연을 통해서 전달받은 서한입니다.
존경하올 수녀님들께,
안동 교구 정희완 신부입니다.
수녀님들의 관심과 도움을 부탁드리고자 이 편지를 씁니다.
저는 <가톨릭 문화와 신학 연구소>라는 연구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신자들의 <신앙 공부 모임>을 활성화 하기 위해서입니다.
연구소와 공부 모임에 대한 소개문을 파일로 보내드립니다.
읽어 보시고,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 되시면,
주변의 신자분들에게 소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사목자(그리스도의 왕직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사목의 동반자이신 수녀님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사목의 최전선(야전 병원)에서 활동하시는 수녀님들의 노고 늘 기억합니다.
사실, 사목의 진정한 의미는 통치한다(다스린다)가 아니라,
돌봄과 헌신에 있습니다. 수녀님들이 가장 훌륭한 사목자임을 생각합니다.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면, <신앙 공부 모임>은,
신앙의 기쁨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공부와 성찰과 일상적 수행을 통해 신앙과 삶의 성숙과 변화를 지향합니다.
신앙과 삶에 대한 공부를 통해 공동체적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앙 공부 모임>은,
신앙의 올바른 의미와 수행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신앙 운동이며,
공부를 통해 신앙과 영성의 성숙을 추구하는 신학 운동이며,
공부하는 공동체의 형성을 통해 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꿈꾸는 교회 운동입니다.
제가 왜 <신앙 공부 모임>을 제안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발제한 논문(프란치스코 교황과 식별의 문제) 내용의 일부를 들려 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공동체와 함께 하는 미사와 본당 활동의 일시적 중단 앞에서, 우리는 지난 신앙 생활을 잠시 반성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다.
솔직하게 말해, 우리 신앙 생활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했다.
본당 밖에서의 신앙 생활에 대한 토대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신앙 생활의 핵심은 미사와 본당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 맞지만, 신앙 생활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성당 밖에서의 신앙 생활이 풍요로워 질 때, 오히려 성당 안에서의 신앙 생활의 의미도 더 깊어질 것이다.”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는 모든 신자들은 세상 안에서 자신의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의 삶 속에서, 사회적 삶 속에서 자신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교육과 성찰이 부족했다.
모든 신자들이 자기들이 선 자리에서 자율적이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에 교회가 소홀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신자들의 신앙 근육과 면역력을 키우는 데에 교회가 조금 더 관심을 가졌었더라면,
공동체 미사 중단과 본당 공동체 생활의 일시적인 중지라는 어려움의 시기를 조금은 더 쉽게 건너갈 수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야기한 도전과 질문에 대해 교회 안의 전문가들의 숙고는 아직 시작 단계이다.
더 많은 성찰과 식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토마시 할리크(Tomás Halík)는, 교회가 철저하게 자신을 새롭게 쇄신하지 않는다면,
격리의 시기의 텅빈 교회 건물의 모습은 숨겨져 있었던 교회의 잠재적인 쇠락과
교회의 암울한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교회가 세상을 회심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해왔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회심시키는 일에는 소홀했다고 지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식별이란 단순히 어떤 특별한 영적 수련을 의미하지 않는다.
식별은 그 본성상 신앙의 핵심적 행위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식별한다는 것은 신앙을 살아낸다는 것이다.
모든 신앙인은 식별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식별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 행위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핵심 요소다.
신앙을 산다는 것은 어떤 종교적 관습과 관행과 규범을 기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보고, 하느님을 닮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식별이란 영성적이고 지성적인 행위이며 동시에 예언적이고 실천적인 행위이다.
식별은 전망(사유, 상상)과 실천(소명과 사명의 수행)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식별은 교회와 신앙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과 방식,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과 방식,
미래를 전망하는 과정과 방식, 그 모두의 과정과 방식에 적용되고 작동되는 것이다.
즉, 식별은 읽기, 반성과 성찰, 전망, 모두를 포함하는 총체적 행위다.
신앙을 산다는 것은 이러한 식별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식별은 신앙적이고 신학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인문적 의미도 갖는다.
식별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고 성찰한다는 것이고 정직하게 묻는 일이다.
식별의 과정은 끊임없이 새로운 관점에서 묻고 열린 태도로 답을 찾아가는 지난한 여정이다.
생각하지 않는, 성찰하지 않는,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늘 타성과 관행에 머물고 만다.
열린 상상, 새로운 상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늘 기존의 규칙과 규범의 준수만을 강조한다.
식별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손쉬운 율법주의와 엄격주의의 태도와 모습을 선택한다.
새로운 상황을 낡은 프레임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새로운 도전에 대해 기존의 방식으로 응대할 수는 없다.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새로운 상상과 식별을 요청한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정직하게 고백하면,
사는 동안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욕심 없이 시작해 볼 생각입니다.
수녀님들의 관심과 도움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정희완 신부
가톨릭 문화와 신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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