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알아가는 생태 신학
*글쓴이 이다한 스테파노,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
자연 세계에 의존하는 인간 - 빙엔의 성녀 힐데가르트
신학자, 설교가, 작곡가, 의학자, 자연 치료사, 식물학자, 동물학자. 이 많은 수식어를 한 몸에 지닌 성인이 있다. 바로 독일의 베네딕토회 수녀였던 빙엔의 성녀 힐데가르트(1098-1179)이다. 힐데가르트 성녀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신이 보고 들은 수많은 현시(vision)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이를 신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생전에 '예언녀'로도 불렸던 중세의 대표적인 여성 신비가이다. 2012년 5월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시성 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여성으로서는 네 번째로 가톨릭교회 학자로 선포되었다.
힐데가르트 성녀의 저서 중 <하느님의 업적>(Liber divinorum operum)은 하느님과 세계, 인간에 대한 성녀의 관점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성녀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창조 세계의 중심에 있으며 우주의 모든 요소를 품고 있는 소우주(microcosm)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에게 하느님을 찾고 지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세계의 건축 한가운데 인간이 서 있으며, 그는 그 세계에 사는 다른 피조물보다 크기는 작지만 자기 영혼의 힘으로 강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신실한 인간은 하느님의 인식 안에 자신의 존재를 가지며 영적이고 세속적인 염원에 있어서 하느님을 지향한다"(Liber divinorum operum, 44-45).
"물론 인간은 하느님의 가장 완벽한 작품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통해 알려질 것이고,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Liber divinorum operum, 196).
이렇듯 인간에 대한 고차원적인 관점을 가지면서 힐데가르트 성녀는 교회의 신학자로서는 드물게 자연 세계에 관한 과학적 탐구에도 관심을 가졌다. 성녀의 이러한 면모를 잘 드러내는 저서가 바로 <원인과 치료, Causae et curae> 그리고 <자연학, Physica>이다.
의학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원인과 치료>는 여러 질병의 원인과 징후, 그리고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자연요법과 자연 치료제들을 소개하는 작품이다. <자연학>은 중세 판 자연 백과사전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힐데가르트 성녀는 약초, 나무, 물고기, 새, 육지 동물 등에 대해 다루면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치유 능력에 주목한다.
특히 놀랍게도 이때 이미 성녀는 오늘날 주목받는 반려동물을 통한 치유법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힐데가르트 성녀의 자연 세계에 관한 관심, 특히 인간의 질병과 이를 치유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자연의 동식물에 대한 탐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성녀는 다른 많은 신학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하느님 창조의 정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인간은 이 세상에서 독자적으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그들과 서로 의존하며 살아간다는 생태적 통찰을 견지하고 있었다.
성녀의 이러한 통찰은 현대인들에게 '다른 피조물이 사라지면 결국 인간도 살 수 없다.'라는 경종을 울리며, 자연 세계와 이를 창조하신 하느님 앞에서 지녀야 할 감사와 겸손의 태도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주: 인용된 힐데가르트 성녀의 작품 번역은 <빛 속에서 보다: 성녀 힐데가르트 이야기>(신창석 저, 힐데가르트 출판사, 2020)에서 인용
하느님의 창조 가족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자연 세계에 관한 교회의 전통적 시각을 고려할 때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1/82-1226)는 특별한 관점을 지녔던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교회는 자연 세계를 인간과 결부 지어 이해했다. 곧 자연 세계가 하느님 창조의 작품으로서 좋고 가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유는 자연 세계가 인간이 살아가는 터전으로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근현대로 오면서 환경 파괴로 인해 자연과 피조물 보호에 관한 관심이 교회 안에서 커지기 시작했지만, 이러한 보호의 이유 역시 그들이 사라지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충족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다 20세기 후반부터 인간과의 연관성을 떠나 자연 세계와 피조물이 그 존재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는 인식, 그리고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이 서로 의존하며 연결된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교회 안에 자기 잡게 되었다.
성 프란치스코의 자연 세계에 대한 관점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찍이 그는 피조물들을 자신이 수도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자원 정도로만 보지 않았다. <피조물의 찬가>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해, 달, 바람, 물, 땅과 같은 자연 요소들을 "형제" "자매"로 부른다.
토마스 첼라노를 비롯한 성인의 전기 작가들은 그가 동식물들을 가족적인 호칭으로ㅗ 부르면서 그들과 친근한 관계를 이룬 많은 일화를 전한다. 이러한 면모 때문에 프란치스코 성인은 여러 예술 작품에서 자연 속을 거니는 모습, 동식물들과 어울리는 모습으로 표현되곤 한다.
그렇지만 프란치스코 성인은 단지 자연 애호가, 동식물 보호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성인의 피조물 사랑은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은 무슨 이유로 피조물들을 "형제자매"로 불렀을까?
인간관계 안에서 "형제자매"는 같은 부모를 둔 자녀를 가리키는 말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피조물들을 "형제자매"로 부르면서 한 가족처럼 여겼던 것은 그들이 좋고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같은 창조주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유일한 천상 아버지로 모시고 있기 때문이었다.
곧 프란치스코 성인은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의 원천이시고, 그분에 의해 모두가 한 가족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피조물들에 권고했으며, <피조물의 찬가>에서 나타나듯이 그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찬미했다.
이렇게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자연 세계는 하느님과의 연관성 안에서 의미가 있으며 그분을 유일한 창조주요 아버지로 모시는 창조 가족이었다. 성인의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생태 위기 속에서 인간이 지구의 생명 공동체, 곧 하느님의 창조 가족에 대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하면서 우리 역시 한 가족의 "형제자매", 하나의 피조물임을 일깨워준다.
*발췌/갈무리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성모기사회 <성모기사>, n.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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