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손성문 신부, 안동교구 소속
교회와 세상 보기 <사제의 치유와 회복에도 관심을>
몇 년 전 주교회의에서 전국의 사제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마지막 주관식에 답을 열심히 적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다른 조사에서는 귀찮아 웬만해선 적지 않는 자리지만 그때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사제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전문적인 돌봄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많은 사제가 소임지에서 정성을 다해 살아간다. 시골 본당이든 도시 본당이든 특수사목이든 마냥 편한 곳은 없다. 그곳의 신자나 지역사회 누군가 모나고 아픈 영혼들이 있기 마련이다. 다양한 이유로 마음이, 영혼이 흔들리고 병든 이들이 늘어 가지만, 사회적으로 그들을 돌볼 이들은 태부족이다.
사제, 수도자들이 애를 쓰지만 이내 지쳐 쓰러지곤 한다. 사제도 사람인지라 늘 열정적일 수만은 없다. 자신도 모르게 지치고 우울해질 수도 있다. 영적인 치유가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교회는 신자에게도 사제에게도 봉사만을 요구하는 듯하다. 우리 영혼의 치유와 성장을 위한 관심을 느끼기 어렵다. 그저 새 영세자를 많이 늘리고 후원금을 많이 받아오는 신부만을 더 챙겨 준다는 느낌은 나만의 착각일까?
큰 교구에서는 중견 사제연수와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안식년이라는 제도도 있긴 하다. 소임에서 벗어나 잠시 쉬는 것만으로도 충전과 회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설문 마지막 기타 란에 구구절절 의견을 적어 보냈지만, 그 이후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국 교회가 어떤 사목을 펼친다는 얘긴 듣지 못했다.
아직 사제가 많아서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일까? 오늘의 교회에 신자가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그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사제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 교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얼마 전 교우들이 은퇴하신 신부님 얘기를 하다가 "젊을 땐 우리가 그분을 무척 좋아했는데, 왜 저렇게(수구적으로) 변했는지 모르겠다."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고, 그분의 개인적 느낌일 수 있다. 그런데 양들을 돌보는 사목자가 복음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변해도 아무런 상관하지 않는다면 이를 과연 교회 공동체라 부를 수 있을까? 오염된 정보로 세상을 반복음적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영혼이 병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교우들에게 상처만 주는 사목자도 있다. 본당이나 공적 기관을 사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활용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 역시 돌봄과 치유의 대상이다. 그들 안에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 그냥 방치한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상처받고 교회를 떠날지 알 수 없다.
작금의 국가 현실을 볼 때 사목자가 건강하지 못하면 공동체가 병드는 것 역시 금방일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원망하며, 그를 이동시키는 수준에서 마무리하고 만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사제의 내면을 살피고, 혹여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가 있다면 치유로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책무가 아닐까 한다.
우리의 영적 건강을 위해 교회는 사제 영성 모임에 많은 관심을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다치고 아픈 영혼의 치유를 위해서도 적극적인 개입을 해주면 좋겠다.
*발췌/갈무리 기쁨과희망사목연구소 빛두레, n.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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