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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신부의 마지막_작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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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15 1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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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갈무리, <생활성서>,n.472

 

너클볼 knuckleball

 

*글쓴이 허찬욱 도미니코 신부, 대구 가톨릭대학 신학과 철학 교수

 

 

18.44m, 투수와 타자 사이의 거리이다. 이 거리에서 투수는 최대한 빠른 공을 던져 타자와 승부한다. 구속(볼의 속도)만 중요한 게 아니다. 공의 회전도 중요하다. 빠른 구속에 회전까지 더해지면 공은 더 묵직해진다. 빠르고 묵직한 직구, 모든 투수가 꿈꾸는 공이다.

하지만 빠르고 묵직한 공과는 완전히 다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있다. 그들은 회전이 없는 공, 공기의 저항을 뚫지 못하고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공을 던진다. 너클볼knuckleball이라 불리는 공이다.

너클볼의 원리는 단순하다. 공의 회전을 줄여 공이 공기의 흐름에 흔들리게 하는 것이다. 예일대 물리학과 교수 로버트 어데어의 설명이다. "공의 회전을 극도로 줄이면, 솔기의 비대칭으로 인해 힘에 큰 균열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공의 궤적이 아주 이상해진다. 공의 솔기가 있는 쪽에서는 공기 저항 때문에 작은 난류가 생기는 반면에, 반대편 매끈한 쪽에서는 공기가 매끄럽게 흘러 공기 저항이 커지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야구의 물리학>, 로버트 어데어, 76-77p)

 

회전이 없어 공기의 저항을 뚫지 못한 공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당연히 제구도 힘들어진다. 너클볼을 제구한다는 건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너클볼은 투수의 손을 떠나 비틀거리며 날아갈 뿐이다. 포수도 그 비틀거림에 넋을 잃고 공을 놓치기 일쑤다.

투수는 던지기 힘들고 포수는 받기 힘들며 타자는 치기 힐들다. 치기 힘들어 배트를 허공에 휘두르면서도 타자들은 너클볼의 가치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 초라한 구속에 지저분한 궤적의 공이 볼품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치기 힘들지만 볼품없어 인정받지는 못하는 너클볼, 그래서일까? 처음부터 너클볼 투수가 되려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처음에는 빠른 공에 정확한 제구를 갖춘 정통파 투수가 되려 한다. 그런 정통파 투수가 될 수 없는 이들이 너클볼 투수가 된다.

<야구 교과서>의 저자 잭 힘플도 말한다. "너클볼 투수 중에 이 투구를 주무기로 선수생활을 시작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모든 투구 방법에 실패했을 때 이 변칙구를 마지막 수단으로 개발해서 너클볼 투수가 되는 것이다."(<야구 교과서>, 잭 햄플, 25p)

 

전설적인 너클볼 투수였던 팀 웨이크필드도 그랬다. 그는 타자로 프로구단에 입단했지만, 타자로서의 성적은 형편없었다. 1할 남짓한 타율이었으니 언제 방출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선수였다. 

어느 날 팀 웨이크필드가 동료와 캐치볼을 하다가 너클볼(비슷한 공)을 던졌는데, 그것을 본 감독이 '이럴 게 아니라 너클볼 투수나 해라'하고 그에게 말했다. 팀 웨이크필드는 감독의 이 말을 비아냥으로 듣는다. 야구를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돌려서 하는구나 싶었단다.

타율이 높은 강타자였다면 '무슨 그런 서운한 말씀을 하십니까'라며 감독에게 바로 따졌겠지만, 그는 강타자가 아닌 보통 타자일 뿐이었고, 보통 타자라고 하기에도 겸연쩍은 1할 언저리의 타자였으므로 '그래, 이거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너클볼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익힌 너클볼로 그는 19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무려 200승을 올린다.

 

로버트 앨런 디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대학 시절에 국가대표로 뽑힐 정도로 주목받는 투수였지만 무리했던 탓인지 그의 팔 인대는 심하게 상하고 만다. 자신의 주무기였던 빠른 직구를 더는 던질 수 없게 된 것. 그때 감독이 로버트 앨런에게 제안한 공이 바로 너클볼이었다. 너클볼은 강하게 던지지 않아도 되니 팔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너클볼은 로버트 앨런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였다. 그는 이 너클볼로 메이저리그에서 120승을 일구어 낸다.

 

너클볼은 아무나 쉽게 던지는 공이 아니다. 너클볼은 던지는 투수가 갖춰야 할 덕목(능력이 아니라 덕목!)이 있다. 가장 중요한 덕목은 예상할 수 없는 우연성에 자신을 맡기는 용기이다. 너클볼 투수는 정확히 제구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너클볼은 통제할 수 없는 공이다. 통제할 수 없으니 예상할 수도 없다. 예상할 수 없으니 예상을 벗어나 실망하는 일도 없다.

모든 일이 다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는 일을 그저 담담히 받아들일 뿐이다. 너클볼은 우연한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공이다. 그 우연한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의 마음이다. 너클볼의 핵심은 욕심내지 않고 힘을 빼는 것이다. 로버트 앨런은 말한다.

 

"너클볼은 야구에서 유일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가장 효과를 발휘하는 공이다. 커브볼은 크게 휘며, 커트볼은 날카롭게 방향이 꺾인다. 싱커볼은 말 그대로 가라앉듯이 뚝 떨어지는 변화구다. 그렇다면 너클볼은? 회전없이 홈플레이트까지 날아간 뒤 그때부터는 엔트로피 법칙이나 공기역학 법칙에 자신을 내맡길 뿐이다."(<어디서 공을 던지더라도>, R.A. 디키, 256p)

 

마음먹은 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 계획은 엉클어지고 힘은 힘대로 든다. 이때 너클볼 투수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요컨대 이런 것. '난관을 뚫으려 힘을 짜내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힘을 뺀다. 우연한 흐름에 자신을 맡긴다. 마음을 비우고 공 하나하나를 무심히 던진다. 던진 공이 어디로 가는지 지켜본다.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와도 받아들인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결국 있을법한 일이 일어난 것뿐이니 실망하지 않는다. 맡은 이닝 동안 실망하지 않고 묵묵히 마운드를 지킨다. 초라한 구속에 지저분한 궤적,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 공이지만 더 화려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나이들고 병들어 목소리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지경에.. 일주일에 한두번 맡은 '성무일도 기도 선후창' 시간~ 힘을 짜내 뭘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힘을 빼라는 군..그리고 나의 가난한 현재 자리를 받아들이라고...ㅋㅋ)

 

로버트 앨런이 너클볼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그는 너클볼을 완벽하고 화려하게 던지려 애썼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선배 너클볼 투수인 팀 웨이크필드는 이렇게 조언했다고. 

"너무 애쓰지 말게. 그저 아웃을 잡아낼 정도면 된다네." 그렇다.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맡은 (자리)이닝에서 아웃을 잡아낼 정도면 되는 거다. 완벽히 제어할 수 없는 삶에서 너클볼 투수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욕심을 버리고 묵묵히 마운드를 지키는 너클볼 투수의 마음을.

 

 

*오늘 야구_너클볼 이야기에서 내 수도 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힘.빼.기.!'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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