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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신학_하느님께서 심으신 씨앗

  • 말씀
  • 2022-10-27 11: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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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심으신 씨앗-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글쓴이 이다한 스테파노, 꼰벤투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

 

신학생 시절 강의 시간에 근본주의에 관한 영상 자료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성경, 특히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현대 과학의 발견을 부정하는 해외 근본주의자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영상에는 그들과의 질의응답이 있었다.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성경에는 공룡이 안 나오는데, 그럼 공룡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근본주의자들이 대답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 만드신 것이다." 곧 성경이, 글자 그대로 믿는 충실한 신자와 그렇지 않은 신자를 가려내기 위한 일종의 미끼로써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답변 외에도 공룡에 대한 다양한 근본주의적 관점이 있다. 누구는 화석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짜라고 부정하거나, 공룡이 과거에는 인간과 함께 있었는데 노아의 대홍수 때 살아남지 못하고 멸종해서 화석이 되었다고도 한다. 물론 공룡은 인류가 출현하기 훨씬 전에 대부분 멸종했고, 최근 고생물학 연구에 따르면 어떤 종은 살아남아서 조류로 진화했기 때문에 '대홍수 때 멸종했다'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창세기의 7일 창조 이야기는, 조선 시대 때 사관들이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이나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에 쓴 난중일기처럼 '역사적 팩트'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과학적 팩트'도 아니다. 7일 창조 이야기는 '신앙의 팩트' 즉 하느님께서 이 세상의 유일한 창조주로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7일"이라는 숫자에 매여서 세상 창조를 이해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창세기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7일 창조 이야기 다음에 창세 2,4ㄴ부터 또 다른 창조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현대의 성경 비평학은 이 두 창조 이야기가 한 명의 저자에 의해 연속적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승에서 유래한 후 편집 과정을 거쳐 배치되었다는 점을 밝혀냈다. 따라서 창조 이야기의 7일을 역사적 또는 과학적 사실로 보거나, 공룡이 창조됐다는 성경 구절이 없으므로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성경 비평학이 덜 발달했던 과거에 신학자들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들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이와 관련해 특별히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354-430)의 해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창조를 "7일" 동안 일어난 사건 순서로 이해하면 논리적으로 모순된다는 것을 알았다. 하느님이 첫째 날 빛을 만드신 후 하루하루 시간이 흘렀다고 하는데, 정작 낮과 밤을 갈라 하루의 기준을 정하는 빛 물체들은 넷째 날이 돼서 창조된다. 논리대로라면 날수를 헤아리는 기준이 되는 빛 물체는 첫째 날 빛과 함께 또는 빛에 이어서 바로 창조되었어야 한다.

또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7일째 하느님께서 창조를 마치고 쉬셨다고 하는데 뒤이어 새로운 창조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도 알았다.

언뜻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창조 이야기들을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여기서 성인은 "종자적 이성 (rationes seminales)"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종자적 이성- 하느님께서 심으신 씨앗

 

우리는 모두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은 일련의 흐름을 의미하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사물이 변하는 속성, 즉 "가변성可變性"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성장하고 사건은 진행된다. 이러한 가변성에 반대되는 개념은 "불변성不變性"이다. 시간에 상관없이 사물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학은 불변성이 하느님의 속성이라고 말한다. 만약 하느님이 가변적이신 분, 곧 변할 수 있는 분이라면, 시간이 흐르면서 하느님이 점점 완전해지실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하지만 하느님은 변함없이 완전한 분이시고, 따라서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분이시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시간 역시 하느님의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7일이라는 시간에 맞춰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그분을 시간의 굴레에 묶는 것이기에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생각했다. 

그래서 집회서에서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께서 만물을 함께 창조하셨다."(집회 18,1)라고 말하듯이,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동시에 함께' 창조하셨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7일이라는 시간은 이러한 동시 창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창세기 저자가 사용한 일종의 표현 방식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피조물들은 시간 안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종자적 이성" 개념을 사용한다. 이 개념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동시에 함께 창조하실 때 어떤 것은 실제 형태대로 창조하셨지만, 어떤 것은 앞으로 존재할 "가능태"로 창조하셨다. 

씨앗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가령 코스모스 씨앗은 코스모스로 자랄 가능성을 품고 있으므로 코스모스의 가능태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실 때 갖가지 피조물의 "씨앗", 곧 가능태를 동시에 함께 창조하여 이 세상에 심으셨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것이 점차 실현되면서 그에 맞는 피조물이 나타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창세기의 두 번째 창조 이야기(창세 2,4ㄴ-25)가 의미하는 바라고 해석했다. 

이러한 신학적 해석에 비춰보면, 공룡이 지구에 나타난 것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들의 가능태가 지구 역사의 특정한 순간에 공룡으로 실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종자적 이성 개념은 현대 과학의 진화론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진화론은 생물종이 점전적으로 변화하여 새로운 종이 형성된다는 개념이지만, 종자적 이성은 가능태가 정해진 형태 그대로 실현된다는 의민이기에 두 개념이 똑같지는 않다.

그런데도 이 개념을 통해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시간 안에서 여러 피조물이 계속 출현할 것이며, 이것이 곧 하느님의 계속된 창조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생각에 비추어 봤을 때,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동식물은 하느님께서 심으신 다양한 가능태들이 실현된 결과, 곧 하느님의 계속된 창조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만일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오늘날 인류가 다양한 동식물들을 멸종으로 몰아가는 것을 본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계속된 창조의 결실, 곧 그분께서 심으신 씨앗의 결실을 훼손하고 있다고 경고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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