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님들 감사합니다
*글쓴이 진우섭 신부, 광주대교구 옥과본당
루치아 할머니는 수녀원에 딸을 보낸 어머니입니다. 평생 흙을 만지며 살아온 전형적인 농촌의 여인이지요. 미사 오시면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조심히 가세요."라는 제 인사에도 별 대답 없이 지나쳐 가시는 분이십니다.
얼마 전 주일미사 때 일입니다. 미사 전에 저에게 작은 종이 가방을 들고 다가오셨습니다. 아무 말 없이 가방을 건네시기에 "뭐예요?"라고 여쭸습니다. 성당 안이라서 그러셨는지, 워낙 말소리가 작으셔서 그랬는지 들릴 듯 말 듯 뭐라 말씀하시고 자리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받아 놓고 난 후 제의방에 들어가면서 가지고 들어가는데 예상보다 무거웠습니다. 제의방에 들어서서 보니 땅콩이 흰 비닐 봉지에 들어 있었습니다.
미사를 마친 후 사제관에 올라왔습니다. 가방을 들고 오면서 '뭔데 이렇게 무겁지? 된장인가? 고추장인가?' 하며 궁금했는데 열어 본 순간 혼자 빵 터졌습니다. 정성스레 수확해서 손수 볶은 땅콩 밑에는 아브라함의 아버지 이름(*테라 TERRA...ㅋㅋㅋ)과 같은 맥주 6캔 한 팩이 놓여 있었습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어디론가 향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성당에 오시는 분께서 '맥주를 어디서부터 들고 오셨던 것일까? 집에서? 아니면 면에 나오셔서 마트에 들리셨을까?' 고관절이 안좋으신지 조금 뒤뚱뒤뚱 걸음하시는 어르신에게는 꽤 무거우셨을 텐데! 참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재치에 감동했습니다. 땅콩과 맥주라는 이 조합을 본인은 평생을 살면서 '즐겨나 보셨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오래 기억에 남을 따뜻하고 정성 가득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루치아 할머니가 오시지 않는 평일미사 강론 때 교우들과 나눴습니다. 주방 자매 없이 사는 사제는 늘 교우들에게 걱정거리입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는 저는 새로운 본당에 갈 때마다 공식적으로 '사제관 외부음식 반입금지'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교우들의 정성과 손의 크기만큼 제 위장의 크기가 비례하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 정성스러움을 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단호함을 교우들이 서운하게 느끼시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이런 제 마음을 강론 시간에 설명해 드렸고 '여러분의 그 마음 다 알고 있으니 행복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미사 후 누군지 모르는 교우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신부님께서 행복하시다고 말씀하시니 기뻤습니다." 그 문자에서도 교우들의 관심과 사랑과 배려를 만났습니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집니다. 텅빈 '공정과 상식'의 시대이지만 사제로 살면서 받았던 따뜻한 추억들 하나 꺼내서 그 마음 녹이시라고 글 올립니다. 땅콩에 맥주 나누실 신부님들 늘 환영합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강녕하시기를 빕니다.
*발췌,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빛두레> 사제가 사제에게, n.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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