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 이야기를 꺼내며, 그에게 이웃이 되어준 사람이 누구인지 반문하신다.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준 사람이라고 답하자,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하고 말씀하신다. 당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이방인으로 여겼기에, 예수님의 비유는 상당히 도발적이었지만, 자기 민족만을 이웃으로 생각하는 유다인들에게 신랄한 비판이기도 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이 질문은 경제 양극화, 각종 이념 등으로 분열을 겪는 우리 사회에 더욱 절박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정치권만을 놓고 보더라도 양편으로 갈라져,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공방과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도 편가르기 문화는 팽배해 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규정하고, 적을 밟고 일어서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일까.
최근 비속어 논란을 일으킨 대통령의 발언에, 한 프랑스 주교님과의 옛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전혀 엉뚱한 일일까? 김수환 추기경님의 초청으로 한국에 ‘프라도 사제회’(가난을 서약하는 교구 사제들 모임)를 소개하기 위해 한국에 오셔서 18년 가량 활동하신 오영진(프랑스 성함은 Olivier de Berranger) 주교님의 이야기다.
당시 일반 사제였던 주교님은 주로 공단에서 사목하시며 노동자들과 생활하셨다. 한국어도 한국인처럼 잘 구사하셨고, 노동자들 틈에서 비속어도 잘 구사하셨다. 주교님은 18년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프랑스로 귀국하신 뒤 주교로 서품되어 생드니 교구장으로 활동하시다 은퇴하시고, 수년 전에 작고하셨다.
필자는 프랑스 유학생 시절 때 주교님으로부터 부제 서품(사제 서품 받기 전 단계)을 받게 되었는데, 부제품 집전을 허락해 주신 주교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직접 찾아뵌 적이 있었다. 그때 주교님은 나와 동료 신학생을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아, 이xx들, 까다로워"라고 하셨다. 보통 주교님의 입에서 잘 안 나오는 표현이었지만, 이 말씀이 매우 친숙하게 들렸던 이유는 프랑스인들을 지칭하며 프랑스인들의 비판적 사고방식을 에둘러 표현하는 동시에 한국에서 오래 사시면서 모국인처럼 된 한국인 편에 서서 우리 입장에서 프랑스인과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대신 표현하려던 따스한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IMF 때 어떤 방송사의 인터뷰에서 주교님은 "나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반드시 이 경제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한국에서 18년 동안의 삶은 주교님에게 한국인과 동화되어 한국인이 겪는 모든 것을 당신 모국이 겪는 것으로 경험하신 듯하다..
"이xx들, 까다로워." 필자는 이 말에서 국적을 넘나들며 모든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고자 하신 주교님의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와 소속이 다르고 이념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그를 밟거나 제거해야만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생각이 다른 타인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평화와 안정된 발전, 더욱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의 건설을 위해 이 땅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매일 매체를 통해 접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폄하하고 흠집을 내며 으르렁대는 성난 사자들의 목소리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이 질문 앞에서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라는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지금 정치권과 종교계 등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가난한 사람들, 사람대접 못 받고 사는 이들, 불의와 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떤 정당이나 이념을 좇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나중에 판단 받을 것은, 지금 여기 살아가면서 우리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이웃이 되어주었는지, 얼마나 사랑과 도움을 베풀며 살았는지 일 것이다. 부디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 사회 전체가 지금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해주며 진정한 ‘국익’, 보다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하는 일에 서로 협력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