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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신학 <브레이킹 바운더리: 지구의 과학>

  • 말씀
  • 2022-09-28 14: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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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킹 바운더리 - 지구의 과학 Breaking Boundaries: The Science of Our Planet , 2021 제작

다큐멘터리 | 73분 | 감독 존 클레이 -생태계 파괴에 따른 기후변화로 지구의 한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다룬 영상물

 

 

함께 알아가는 생태 신학

**글쓴이 이다한 스테파노,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

 

<브레이킹 바운더리>는 영국의 자연 다큐멘터리 거장 데이비드 애튼버러 경과 스웨덴의 과학자 요한 록스트룀이 지구의 환경을 진단하고 다가오는 위기를 막아 내기 위해 변화를 호소하는 내용의 영화이다.

 

요한 록스트룀은 지구 환경의 안정 상태를 결정짓는 아홉 가지 지표, 곧 기후, 삼림, 생물 다양성, 담수, 영양분(질소/인)의 순환, 바다의 산성화, 신물질, 공기 오염, 오존층이 위험 한계선을 넘지 않고 안전지대 내에 있어야 생명체가 안정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아홉 가지 지표 중 오존층을 제외한 모든 지표가 이미 한계선을 지나 위험지대에 있거나 빠르게 위험지대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어떤 지표는 안전지대에 있는지 위험지대에 있는지조차 알수 없다.

만약 이 지표들이 계속해서 위험지대에 있으면서 임계점을 넘게 되면, 지구는 다시는 안정된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마치 중병이 너무 늦게 발견된 경우, 의사가 수술은 물론 어떠한 조치도 할 수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 

요한 록스트룀은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모든 지표가 다시 안전한 상태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앞으로 인류의 삶과 모든 논의의 중심은 지구 환경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흔히 여름에 더위를 잊기 위하여 공포 영화를 보곤 한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영화가 아니라 점점 더워지면서 안정을 잃어가는 지구의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는 환경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무관심으로 생태 질서가 무너진 불안정한 지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가정생활, 직장생활, 신앙생활 모두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무서운 상황을 막을 기회의 창이 좁다랗게 열려 있다. 그 창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모두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다큐멘터리 영화 <브레이킹 바운더리: 지구의 과학>은 강변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생태 신학은 자연 세계를 하느님과 인간과 마찬가지로 신학 연구의 중심 테마로 삼는다. 이제는 교회의 시스템과 신앙생활 안에서도 지구 환경이 주요 주제이자 식별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세계 곳곳의 이상기후에 관한 뉴스가 자주 들리는 이 시데에, 아직 남아 있는 기회의 창을 활짝 열어젖히도록 우리 함께 노력해야 하겠다.

 

하느님과 직접 연결된 모든 피조물-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여기서부터는 교회의 성인과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생태 신학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생태 신학은 현대 자연과학의 발전과 환경위기에 대한 인식 위에서 출발했다. 물론 우리보다 훨씬 이전에 살았던 성인과 신학자들은 진화론과 같은 이론, 그리고 기후변화, 생물 다양성 손실과 같은 문제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엄밀한 의미로 그들이 생태 신학을 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생태 신학은 이러한 시간의 차이를 넘어 오늘날에도 자연 세계의 가치와 의미를 일깨워주고 생태적 회개를 고취할 수 있는 지혜를 그들의 가르치과 전통 안에서 찾는다. 그러한 지혜의 첫 번째 사례로 고대 교부인 성아타나시오 주교 학자(295~373)의 가르침을 소개한다.

 

아타나시오 성인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삼위일체 그리고 창조에 관한 교리와 다른 이단 사상들이 만연해 있었다. 일례로 성부만이 진정한 한 분 하느님이시고, 성부로부터 낳음을 받으신 성자는 성부와 같지 않으며 그분께서 창조하신 일종의 하위 하느님, 작은 하느님이라고 보는 종속설이 퍼져 있었다.

또한, 창조와 관련해서는, 피조물과 완전히 다른 초월적 존재이신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에 무한한 차이가 있는데, 하느님이 피조물과 직접 관련된다면 그분의 품위가 손상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부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피조물 사이에 중개 역할을 할 작은 하느님인 성자, 곧 말씀을 창조하셨고 그 말씀을 통해 다른 피조물을 창조하신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상들에 반대하면서 아타나시오 성인은 성자가 성부와 같은 본성을 지니신 하느님이시라는 진리를 강변했다. 성자, 곧 말씀을 통해 성부께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지만, 그 말씀은 무(無)에서 창조된 피조물이 아니라 성부와 마찬가지로 영원하신 하느님이시며 성부와 동등한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하느님 외의 다른 중개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피조물을 직접 창조하시고, 따라서 그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우리가 태양 아래에 서 있으면 태양 빛을 직접 받아 우리 몸이 비치는 것처럼, 피조물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존재를 받아 창조됨으로써 그분과 직결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과 직접 연결되어 있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 아타나시오 성인의 관점에 비춰볼 때, 자연 세계와 그 안의 동식물들도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가'라는 잣대로 평가되기 이전에, 하느님과 직접 관련된 그들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과 함께 계신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현대 생태 신학에서 말하듯이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과 함께 계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발췌/갈무리  성모기사회 잡지 <성모기사 MILITIA IMMACULATAE>, N.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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