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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함께 가자'고 할까

  • 말씀
  • 2022-09-16 09: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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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최현순 대데레사(평신도 신학자이며 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교수)

 

내년(2023년 10월) 세계주교시노드를 향해 가면서 각 지역교회는 시노드를 통하여 실제로 시노달리타스의 삶을 구체적으로 체험했고, 이것은 많은 신자와 목자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었다. 각교구 단계의 시노드가 마무리된 지금, 우리는 잔치가 끝난 후의 정적 같은 것을 느끼고 있을까? 지금이야말로 시노달리타스가 무엇인지 재확인할 때가 아닐까?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라는 말이 어원적으로 시노두스(synodus)에서 유래했고, 또 그것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시노두스 "사건"으로 환원될 수 없다. 정확히 말해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삶과 활동 방식"을 뜻한다. 교회가 지상에서 살아가고 또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방식이 시노달리타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을 말하는 것일까?

어원이 말하는 것처럼, 시노달리타스는 근본적으로 "함께 감"을 뜻한다. 그런데 이 '함께 감'이라는 말에는 "누가, 어떻게, 무엇을 하며, 어디를 향해 가는지"가 들어있다. '누가'에 대한 답은 교회, '하느님 백성'이다. 이 개념은 바티칸 공의회가 선언한 교회 모습이며 기본적으로는 세례받은 모든 사람 전체를 가리킨다.

이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동등한 품위와 존엄성을 지닌다. 또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각각 지체를 형성하여 몸이 성장하는 데에 기여한다.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교회에서 각 지체가 하는 역할의 존엄성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이들 사이에 어떠한 상하 관계도 허용하지 않는다(1코린 12,12-27 참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이라는 말은 교회 안에서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몫이 있다는 뜻이며, 각자가 그 몫을 해줄 때 몸은 성장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시노달리타스의 주체, "누가"에 해당하는 것은 교회이되, 주체는 "주체들의 주체"이다.

 

이 주체들은 함께 가지만 '산책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목표를 향해 걸어간다. 그것은 충만한 구원, 거룩함 자체이신 하느님, 영원한 생명, 하느님 나라라고 표현할 수 있다. 각 구성원이 저마다의 길에서 자기 몫을 하며 이 동일한 목표를 향해 걸어간다.

이 여정은 교회 구성원의 삶과 활동으로 구성된다. 교회는 구원의 복음을 삶과 활동 속에서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가 이 사명을 수행하도록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교회 안에 울려 퍼지게 하시고 성사로써 하느님과 친교, 사람들 사이의 친교를 누리게 하신다.

 

이러한 여정은 혼자 고립되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자체가 개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랑이기 때문에 그 증언은 공동체성을 띨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여정에 다양한 직무들, 특히 교계제도를 주셔서, 하느님 백성이 "자유로이" "질서 있게" 이 여정을 갈 수 있도록,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봉사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목자와 신자들 사이에는 넘지 못할 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소통과 상호 협력과 호혜성의 원칙이 있다.

 

이렇게 하느님 백성이 공통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공통의 목표를 향해가는 여정을 시노달리타스라고 한다. 시노달리타스를 살기 위해 자신과 다른 이의 품위를 올바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시노달리타스에서 강조되는 것이 경청인데, 경청은 이 상호존중 없이는 불가능하다.

시노달리사스는 현대 교회에 덧붙여진 개념이 아니라 본래부터 교회가 교회이기 위하여 갖추어야 하는 모습, 질서 있지만, 저마다 자유롭게 제 몫을 하고 다른 사람도 그 몫을 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복음선포 사명에 함께 수행하며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인 것이다.

 

지금 교회는 이 모습을 새롭게 살아가자고 초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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