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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 강론_아꼈다가 어디 쓰려고

  • 말씀
  • 2022-07-11 11: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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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 빛두레 n.1566_쉐마_아꼈다가 어디 쓰려고_연중 제15주일 복음 루카 10,25~37

 

 

"선생, 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되물으셨다. "율법에 뭐라고 적혀 있으며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읽소?"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지요." 예수께서 이르시기를 "옭은 대답이오. 그리하시오. 그러면 살 것이오."(루카 10,25~28)

 

예수님은 질문자의 점잖지 못한 의도를 알았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고 간단한 진리를 간단하게 설하셨다. 인간의 감정에서 자유로운 성심의 일면을 본다. 그쯤 했으면 '잘 배웠습니다' 하고 그만 물러서야 할 것을 끝까지 자기를 내세우고 싶었던 율법학자가 다시 묻는다. "그러면 누가 내 이웃입니까?" 그래서 이어지게 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소. 강도들이 그를 ... . 마침 한 사제가 ... ."

 

-중략-

 

열 가지 동사

사마리아인은 마치 십계명을 따르려는 듯 열 가지 행동을 보여주었다. ① 보고 ②마음 아파하고 ③ 다가가고 ④ (포도주와 기름을) 붓고 ⑤ 싸매주고 ⑥ (노새에) 태우고 ⑦ (여관으로) 데려가고 ⑧ 돌봐주고 ⑨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고 ⑩ 돌아올 때 다시 지불하였다.

사람이 사람 노릇 제대로 하자면 많은 동사를 발휘해야 하는가 보다. 반면 다른 두 사람인 사제와 레위인의 경우 딱 두 개의 동작뿐이다.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루카 10, 31.32)

열 개의 동사 가운데 보다/멈춰서다/만지다를 새겨본다.

 

-보아라, 예수님처럼_ 강도 만난 사람을 보는 순간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처참한 몰골과 상처를 보자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몸을 굽혀서 응급처치에 나선다. 성경에 보고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나오는데 대개 이렇게 자백을 한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헐벗으신 것을 보았단 말입니까?" 보고도 보지 못하는 자들을 성경은 어리석다고 말한다.

 

-멈춰서라, 예수님처럼_ 부처님 믿는 사람과 예수님 믿는 사람은 다를까. 다르긴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다를까. 역시 다를 것이다. 하지만 <멈추는 사람>과 <그냥 지나가는 사람>만큼 그 차이가 크지는 않으리라. 그냥 지나가면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게 되고, 하느님은 더더욱 아니 계시게 된다. 달리는 차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세계는 비로소 열린다. 무인지경이나 절해고도의 삶이라면 동사 두어 개만으로도 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서로 비스듬히 기대어 사는 이 세상에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만져라, 예수님처럼_ 예수님은 만지는 분이었다. 만져서는 안 되는 이들을 만져주는 분이었다. 밖으로 쫓아내야 하는 사람, 불결한 사람, 전염병을 가진 사람, 부정한 사람, 버림받은 자들을 자주 만져주셨다. 나병환자가 부르면 멈춰 섰고, 가까이 가서 만져주셨다. 죽은 외아들을 앞세우고 가는 과부를 보고 멈춰 섰고, 다가가서 관에 손을 얹으셨다. 만져준 사람들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깨달아서 뭣에 쓰려고요?

아끼다가 똥 될라, 하는 말도 있잖은가. 어차피 썩을 몸 부지런히 부리자. 누가 되었든 다가가서 보아주고, 보면서 만져주자. 당장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재수 엄 붙었던 사람의 운명만큼은 틀림없이 바뀐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자비를 실천한 그 사람에게서 벌어진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릴 한 줄기 연기 같은 그의 목숨이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루카 10,25) 있게 된다.

 

"미얀마 시위현장에서 어느 수녀님의 눈물가 애원이 시위대의 죽음을 막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기도하는 수도자의 모습이 이래야 하는 거지요. 감동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아름다우셨습니다. 수행의 깊이는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확인하는 것이지요. 마음공부는 왜 하고, 묵상기도는 왜 하는 거지요? 생사의 의미를 찾아서 도대체 어디에 쓰시려고요?"(2021.3.5일자 이철수의 나뭇잎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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