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칙 <복음의 기쁨>이 교회의 내적 쇄신을 위한 자기 복음화로써 문화의 복음화를 다루어왔다면, 회칙 <모든 형제들>은 세상의 복음화를 지향하며 문화의 복음화 과정을 다향한 현대문화, 좀 더 구체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준거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회칙 <모든 형제들>이 제시한 몇 가지 현대 문화의 어두운 면을 살펴본다.
*사목연구 n.47, 문화의 복음화로 바라본 회칙 <모든 형제들>, 김민수
3.1 현대문화의 현 실태
3.1.1 경제에 종속된 정치 문화
회칙 <모든 형제들>은 '더 좋은 정치'라는 소제목으로 제5장을 할애할 만큼 정치 분야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회칙의 핵심인 보편적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를 실현하는 방편 중의 하나가 정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 현실은 초국가적 경제 권력을 휘두르는 세계 경제에 짓눌려 암울하다.
세계 경제는 지역 분쟁 그리고 공동선에 대한 무관심을 단일 문화 모형의 강요를 위한 도구로 삼습니다. 이러한 문화가 세계를 획일화시키는 한편 개인과 나라들은 갈라놓습니다(12항).
경제의 세계화는 정치, 문화의 세계화를 가져왔지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장이 늘어나면서 소수만의 이익에 일조하여 강자의 정체성은 강화되는 반면 삶의 공동체와 가난한 지역은 약화되고 더욱 의존하게 된다. 세계화가 시공간적으로 압축된 지구촌을 이루며 서로 이웃이 되지만 형제가 되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정치가 결여된 경제를 정당화할 수 없다."(회칙 <찬미받으소서>, 196항) 타인과 세상에 책임을 지고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사회적 정치적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3.1.2 버림의 문화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회칙과 권고, 강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강조해온 내용 중의 하나가 '버림의 문화'이다. 오늘날 경쟁 논리와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른 '배척의 경제'가 심화되면서 부와 권력을 누리는 소수의 강자와 배척과 소외를 겪는 수많은 약자들로 극단화된 사회적 불평등이 지배적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단순히 착취와 억압에 머물지 않고 '쫓겨난 이들, 버려진 사람들'인 '잉여인간'으로 취급되고 있다.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과 상품이 짧은 수명을 다하거나 과소비의 결과 엄청난 쓰레기로 폐기되듯이, 인간을 사용하다가 그냥 버리는 소모품처럼 여기는 '버리는 문화'는 현대 문화가 낳은 커다란 그늘이다.
버리은 여러 방식으로 드러난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특징인 경제적 효율성과 합리성에 천착한 현대문화는 '마케팅'으로 전락한 정치 메커니즘에 따라 '지구적 버림'을 장려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되면서 가난한 이들, 장애인, 태아처럼 '아직 쓸모없는' 존재, 노인처럼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는 배척받고 버림받는다.
빈곤으로 이어지는 실업이나 인종차별 역시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예견된 산업재해로 죽음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은 일종의 소모품으로 간주되는 죽음의 문화로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이다.
3.1.3 이주민을 향한 혐오 문화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후 가장 먼저 난민 캠프촌을 찾아가는 사목활동을 수행했을 정도로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연민의 정을 보인다. 최근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 정치적 갈등, 전쟁 등으로 의도치 않게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이주하는 이주민과 난민들은 출신지, 문화와 종교와 단절,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배척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
교황은 이들을 우리와 같은 형제자매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들의 존엄성을 존중해주어야 하고, 그러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이주민들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환영, 보호, 증진, 통합의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129항).
회칙은 다름, 다른 이, 다른 문화와 같은 이질적인 요소로 인해 우리가 충만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역설한다(150항).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차이'일 뿐이다.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할 때 다른 이, 다른 문화는 두려움과 위험으로 느끼고 혐오와 증오, 배척의 대상이 된다.
즉, '지역적 나르시시즘'은 다른 이들에 대한 어떤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자기 보호를 위한 방어벽 쌓기를 선호하는 폐쇄적인 정신에 집착하고 갇히게 되는 것이다(146항 참조). 대표적인 사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전 대통령이 추진한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과 불법 이민자 체포를 언급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한 문화는 본질적으로 열려 있고 환대한다"(146항 참조).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은 고립이 아닌 다른 문화와의 대화를 통해 굳건해지고 풍요로워진다.
문화의 세계화가 획일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토착적인 자국문화가 다른 문화와 만나면서 유익한 새로운 통합을 이루며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148항 참조). 상호 조화를 이루며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를 '적'이 아닌 '이웃'으로, 서로 주체로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3.1.4 커뮤니케이션의 환상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신의 회칙과 권고를 통해 현대문화 중에 매우 중요한 요소인 커뮤니케이션을 심도 깊게 다루며 그것의 빛과 그림자라는 양면성을 서술한다. 우선, 커뮤니케이션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한다.
대중 매체는 우리를 서로 좀 더 가깝게 느끼게 해 주고, 인류 가족의 새로운 일체감을 조성하게끔 도와줄 수 있습니다. ... 인터넷은 모든 사람에게 만남과 연대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이것은 정말 좋은것으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회칙 <모든 형제들>, 205항)
인터넷을 포함하여 하느님의 선물인 대중 매체 혹은 매스 미디어는 만남과 대화의 문화를 촉진시킨다. "오늘날 매체는 우리 서로가 의사소통을 하며 지식과 감정을 서로 나눌 수 있게 한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가져다주는 편리함에 비해 CCTV나 정보 해킹을 통해 개인정보가 누출되고, 사생활이 침해받으며, 관찰 대상으로 전락하게 하는 '디지털 감시사회'를 체험한다. 이는 사이버 폭력과 디지털 성범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을 중독, 고립의 위험, 그리고 현실 접촉 차단으로 참된 만남과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회칙 <모든 형제들>은 계속해서 커뮤니케이션이 만들어내는 죽음의 문화를 소개한다. 언어폭력과 같은 사회적 공격성을 띤 악플들, 편견과 증오를 조장하는 디지털 플랫폼들, 신뢰할 수 없는 매체 정보를 바탕으로 동시다발적인 독백들을 교환하는 각종 SNS, 여론 조작과 위장에 따른 가짜 뉴스의 생산과 유통, 사색보다 검색에 익숙한 결과인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얄팍한 지식과 정보에 의존하고, 깊은 사색과 묵상이 결여된다면 교황이 제시하는 새로운 문화로서 만남의 문화를 이루는데 장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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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위한 대안문화인 형재애와 사회적 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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