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은 외롭다*책소개 아님, 철학자요 사제인 어느 신부의 '사유'를 소개/동행하고 싶어 생활성서(vol.466)에서 따온 글
*글쓴이 허찬욱 도미니꼬 신부, 대구대교구 소속 사제, 대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일본 순문학의 거장 미야모토 테루가 소설을 쓰기 전, 광고 회사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광고 회사의 디자이너가 미야모토 테루에게 광고에 쓸 사진을 골라 보라고 합니다. 미야모토 테루는 여러 사진 중, 가족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을 고릅니다. 디자이너는 팔짱을 낀 채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광고업계에서는 사람의 뒷모습을 쓰는 것은 일종의 터부야. 뒷모습은 어떤 식으로 써도, 외롭거든."(미야모토 테루, <생의 시루엣> 10p)
미야모토 테루가 사람의 뒷모습을 의식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라고 합니다. 그는 광고 디자이너의 말을 듣고, "과연 그렇구나, 뒷모습에는 아무래도 '떠나간다'는 인상이 늘 따라붙겠지"하고 고개를 주억입니다. 그는 그때부터 사람의 뒷모습, 어떤식으로 써도 외로운 뒷모습에 끌리게 됩니다. 그는 "누군가를 떠올릴 때 반드시 그 사람의 뒷모습을 마음속에 되살리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같은 책, 10p)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중, 사람의 뒷모습을 가장 집요하게 묘사하는 소설은 <환상의 빛>입니다. 주인공 유미코는 철로에 몸을 던져 세상을 등진 남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 왜 죽을 결심을 했는지 알고 싶지만, 아내는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어느날 아내는 해변을 걷는 낯선 남자의 뒷모습을 가만히 겹쳐 봅니다. 낯선 남자의 뒷모습이 죽은 남편의 속마음을 알려 주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지요. 당연한 일이지만, 유미코는 그 뒷모습에서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유미코는 체념하며 말합니다.
"그것은 아무리 힘껏 껴안아도 돌아다 봐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뭘 물어도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피를 나눈 자의 애원하는 소리에도 절대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미야모토 테루, <환상의 빛>59p)
그녀가 본 것은 뒷모습이었습니다. 그녀가 낯선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떠올려 본 남편의 뒷모습은 열리지 않는 생의 이면이자, 진실을 봉인해 둔 무거운 돌문이었습니다. 남편의 뒷모습은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는 아득한 황무지로 그녀를 가만히, 그러나 힘 있게 밀쳐 냅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환상의 빛>을 읽고 이렇게 씁니다.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 해석되지 않는 뒷모습을 품고 있는 소설, 인생의 얼굴에 스치는 표정들 중 하나를 고요하게 보여주는 소설. (...) 그런 소설을 읽으면 겸손해지고 또 쓸쓸해진다. 삶의 진실이라는 게 이렇게 미세한 것이구나 싶어 겸손해지고, 내가 아는 건 그 진실의 극히 일부일 뿐이구나 싶어 또 쓸쓸해지는 것이다. 미야모토 테루의 이 아름다운 소설 앞에서 나는 겸손해지고 또 쓸쓸해졌다."(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55-57p)
우리는 사람의 앞모습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읽어 냅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람의 표정을 읽고,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안다고 믿어 버립니다. 그렇게 믿어 버리면, 우리는 마주한 사람을 더는 조심스레 대하지 않습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대상에게는 어떠한 신비로움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아야 할 것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은 대상 앞에서, 애써 겸손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마주한 사람에게 '해석되지 않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겸손할 수 있습니다.
해석되지 않는 뒷모습은 낯섭니다. 이 낯섦 때문에, 나는 당신을 파악할 수 없는 누군가로, 여전히 불가해한 존재로 남겨둘 수밖에 없지요. 달의 숨겨진 뒷면처럼, 표정을 걸어 잠근 누군가의 단단한 뒷모습처럼, 사람에게는 열리지 않는 생의 이면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겸손해지고 또 쓸쓸해'집니다.
"뒷모습은 어떤 식으로 써도 외롭다"는 말을 다시 생각합니다. 외로운 것은 당신의 뒷모습이 아니라,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모르는 생의 이면이 있다는 것을 쓸쓸하게 인정하는 것이 외로움의 본령이라면, 저는 생의 마직막 순간까지 외롭고 싶습니다. 차라리 외롭고 말지, 당신을 속속들이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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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인터넷에서 퍼옴. 삶의 여정길에 나선 외로운 이들의 동행...바로 우리, 나의 뒷모습임을 자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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