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으로 정치권뿐 아니라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 사안에 대해 종교인으로서 의견을 표명할 입장도 아니며, 그럴 역량도 없다. 다만 그것이 정치뿐 아니라 인간 삶에 늘 존재하는 힘의 문제와 상관하기에, 그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원론적인 말이겠지만, 결국 자신에게 권력이나 힘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인간은 힘 앞에서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권력자나 정치인이 힘이나 권력을 폭력의 도구로 혹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일반 사회와 마찬가지로 가톨릭 교회에도 힘의 문제는 처음부터 존재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논쟁하던 제자들을 본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6)
힘에 대한 오해와 남용은 때로는 성직자의 권위주의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유혹에 맞서 오늘 새롭게 대두되는 것이 바로 ‘시노드(synodus)’다. 이 단어는 ‘함께’를 뜻하는 그리스어 ‘쉰’과 ‘길’을 뜻하는 ‘호도스’가 합쳐진 단어로, ‘함께 길을 걷는다’는 의미다. 시노드는 다양한 제도로 구현되는데, 그중 ‘교구 시노드’는 한 교구(예를 들어 인천 혹은 수원)의 장(長)인 교구장 주교가 교회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방향을 정할 때, 교구민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협의하도록 하는 모임이자 제도다. 여기에는 성직자와 일반 신자가 함께 모여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고 서로 경청하며 함께 결정하고 그 결정에 함께 책임을 진다는 정신이 담겨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시노드 정신을 오늘의 가톨릭 교회의 정화와 쇄신을 위한 처방으로 제시하며, 진정한 권위는 봉사하는 권위여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교회의 시노드 제도를 사회적, 정치적 대안으로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혼란스러운 시기에 그러한 정신을 한 번쯤 고려해 보면 어떨까 한다. 시노드 정신이란 모든 이의 의견이 소중하다는 것이며, 서로 경청하고 결정에 함께 동참하며 그 결정에 함께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제를 더 명확히 진단하고 가야 할 길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함께’이며, 전체의 선익을 위한 공감대다. 그러한 정신이 사회에 퍼진다면,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양상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우리 삶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뿐 아니라 단체 혹은 개인이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대화하고 경청하며 모색하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길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뚜렷하게 보이게 된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모여 생각이 무르익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진 것이다.
물론 시노드 정신은 현실에서 많은 저항에 부딪히고 있고, 한국 가톨릭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 삶에는 힘으로 남을 지배하거나 이익을 얻고, 남보다 나를 낫게 여기는 유혹이 도사린다. 그렇기에 개혁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 시간은 사람들의 의식 변화를 위한 시간이며, 제도의 정착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현실의 저항으로 인해 개혁을 포기해서는 안 되겠지만, 필요한 시간을 무시하고 서둘러서도 안 될 것이다.
역사의 발전은 힘으로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 이들이 서로 경청하며 협의해가는 과정 속에서 사회는 발전한다. 부디 한국 사회가 여러 갈등과 불화를 딛고 더 희망찬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온 국민이 마음과 힘을 모았으면 한다.
한민택,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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