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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리' vs. '대통령선거'

  • 말씀
  • 2022-02-15 11: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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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적 결과에 관심을 기울이는 그런 정치는,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단기의 성장에 내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 근시안적인 권력의 정치는 멀리 내다보아야 할 환경 관련 의제를 정부들의 전체 의제 안에 포함하는 일을 지연시킵니다. ... 참된 치국은,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고상한 원리들을 유지하고 장기간의 공동선에 관해 생각할 때 분명이 드러납니다"(찬미받으소서, 178항).

 

선거의 계절이란다. 시끌시끌, 어질어질하다. '돈벌이가 된 대중매체'란 말이 자꾸 입가에 맴돌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시끌시끌함이 건전한 활력, 곧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동력인지, 아니면 그저 한때의 소동일 뿐인지를 우리는 무엇으로 가늠해야 할까? 저마다 그 판단의 기준이 다르겠으나, 앞의 인용을 바탕으로 그 척도를 떠올린다.

 

"길가에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이들을 포용하거나 배제하는 그 결정은 어떤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계획사업이든 다 그 게획사업을 심리하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모든 형제, 69항). 

 

교회의 믿음에서나 교리에서나, '사회적 약자'를 향한 '사회 정치 차원의 카리타스'를 주도할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근시안적인 정치'와 '참된 치국'을 가늠하는 최고의 기준은, 곧 '고상한 원리들' 가운데 우리 신앙인에게 '가장 고상한 원리'는 '사회적 약자의 최-우선성'이다. 한 마리 양을 무사히 데려올 때 한 무리의 완전체가 되기 때문이다.

 

이성의 빛을 비추고 역사의 경험에서 찾아낸 '상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영어의 'economy'는 원래 '집안 살림살이'로서 '가족을 살리는 일'을 겨냥하였지, '돈'을 섬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20세기 들어 수(數)의 영역, 곧 economics가 되어 마침내 '사람의 삶'을 배제하는 길로, 본래의 길을 이탈하여 내달리게 되었고, 오늘날 우리는 그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politics'도 'polity'(조직체)의 문제를 다루는 기술이나 학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흘러 그 '기술'이 목적으로 둔갑하여 '정치'는 '정쟁'이 되어버렸고, 결국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오늘날 '집안 살림살이'에서 '국가 살림살이'로, '조직체'가 '국가'로, 더 나아가 '세계'로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었다. 이른바 세계화의 진행 결과다. 그 악영향이 바로 경제 분야에서는 심각한 부의 불균형 분배이며 정치 영역에서는 '민주주의의 위기' '국가주의의 발흥'이다.

 

이쯤 해서 경세제민(經世濟民)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한자는 권력의 목적도, 경제의 목적도, '민의 구제'에 있음을 가르친다. 모든 인간 활동, 특히 정치, 경제, 문화 분야 등의 사회생활은 그 토대도, 목적도, 근본도 인간이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분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구제'의 몫은 남는다. 자연스럽게 앞의 내용과 만나게 된다. '사회정치 차원의 카리타스' 곧 제도와 법을 잘 세워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 분야, 지역, 심지어 '자연환경'까지도 공생 공영하려는 그 정신과 기세와 역량이 요구된다.

 

대통령선거가 다가온다. 아무리 시끌시끌하더라도, '사회정치 차원의 카리타스'의 정신과 기세와 역량을 갖춘 후보를 찾자. '시민'(국정에 참여할 지위에 있는 국민)의 성숙함이 시험대에 또 올랐다.

 

*박동호 안드레아 신부/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기획위원장, 기쁨과희망  제3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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