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대선, 총선 때마다 후보들에게 '정책질의'를 해보았다. 성의 있게 응답하는 후보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마나한 답을 보내거나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았던 미꾸라지들도 있었다. 돌이켜 보니 답변을 거부한 뻔뻔한 후보들이 영악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책에 관한 소신을 밝혀봤자 누가 읽어보랴, 들으려고하랴? 비겁하게 속내를 감췄더라도 사람들 기억에서 금방 지워질 것이고 아무 영향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렇다. 애를 써서 양질의 공약을 내놓더라도 유권자들은 관심을 주거나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잘 만든 영상과 사진, 이미지들이 표를 얻는데 훨씬 효과적이다.
최근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대화하면서 실감한 게 하나 있다. 새삼스러울 것 하나 없는 소리지만, 세상을 걱정하는 퍽 진지한 사람들도 이제는 책보다는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서비스들을 통해 접하는 영화와 드라마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는 사실이다. 글자의 시대는 흘러갔고 바야흐로 영상이 전달매체의 주류가 된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이런 변화가 벅차다.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하여 이미지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자기에게 유리한 메시지를 퍼뜨리는 자들의 실력에 비하면 지난날 문자로써 그 일을 해내던 우리는 너무나 무력하고 무능해졌다.
희대의 사기꾼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성공한 사업가의 이미지 덕분이었다. 대중은 돈 불리는 데 유능한 자가 대통령이 되면 나도 부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착각에 빠졌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미지가 아니었으면 이렇다 할 국정 철학을 갖추지 못한 박근혜는 절대로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교묘한 연출을 통해 생산되는 사진과 영상들이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한때 텔레비전 토론이 선거를 주도했는데 이제는 포탈이 제왕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뉴스를 생산하는 신문사나 방송사는 포탈의 권력 앞에 알아서 기고 있다. 뉴스 장사도 포탈, 선거 운동도 포탈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나 다음의 입맛에 맞으면 저질, 가짜, 조작 뉴스라도 하루 종일 대문에 걸려 있고, 그렇지 않으면 접근을 봉쇄해 버린다. 거의 신성불가침의 권위를 행사하는 포탈의 에이아이(AI) 앞에 인간다운 상식은 초라하다. 전 국민을 상대로 신문 가판대 역할을 독점하다 보니 눈 가리고 아웅하기가 너무나 쉬워졌다. 뉴스 제목만 흘끗 보고 이런 죽일 놈, 하고 마는 대중은 번번이 속는다. 만날 때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의구현사제단의 혁혁한 공로에 경의를 표한다고 인사하는 어느 역사 선생님이 윤석열에 홀딱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 이게 현실이다.
과연 시민들이 거짓 이미지의 너울을 찢고(깨달을 각, 깰 교; 覺은 그런 형상을 그린 글자) 상식의 눈으로 미래를 위한 식별에 성공할지 궁금하다. 굳이 누구를 뽑을 것인가, 하고 물으면 두 가지 기준을 말하고 싶다.
하나는 평화, 다른 하나는 창조질서 보존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조차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면 발 벗고 나서겠다는 마당에 '종전선언'을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곤란하지 않겠나. 전 세계가 지구의 온도 상승을 막는 일에 분투하고, 지구촌 곳곳에서 탈핵을 선언하는 마당에 '탈원전'을 비판하고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방사능 유출은 없었다고 우기는 후보라면 우리 신앙이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겠나.
같은 죄를 범해도 일반인 기소율은 43퍼센트이지만 판검사들의 경우 1퍼센트 미만이다. 그런 자들이 똘똘 뭉쳐 '공정과 상식'의 관리자가 되겠다고 나섰다. 시민들의 민주역량에 기댈 따름이다. 됫박으로 잠시 등불을 덮을 수야 있지만 마음속에 든 거짓을 영영 감출 수는 없다.
-최재철 신부, 수원교구 성남동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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