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致命) vs. 그리스도인의 향기, 향미(香味)
별로 의식하지도 못하지만 채소든 과일이든 지난날에 비하면 맛과 향이 너무 떨어진다. 어릴 적 옆집 토마토를 얻어먹던 그 맛을 나의 혀는 여태껏 기억하고 있다. 입 안 가득 번지고 코끝까지 퍼지던 풍미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어느 때는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요즘 토마토는 맹물처럼 밍밍한 경우가 많다.
상추는 어떤가. 은근한 쓴맛에다 먹고 나면 졸음을 부르곤 하던 상추는 어디로 갔을까. 잘라낸 아래쪽에서 나오던 흰 진액은 어째서 보기 어려운가. 그럴 수밖에. 생산량을 높이고 저장 기간을 늘리려고 종자를 개량하는 과정에서 향미가 약해졌다. 화학비료, 비닐하우스, 지력의 쇠퇴와 토양 미생물 감소 등도 한몫했을 것이다. 양은 늘어났지만 질은 그만큼 떨어지면서 본래의 향미가 사라져버린 현상을 일명 '희석 효과'라고 부른다.
맛대가리 없는 닭고기
과일이나 곡식이 뿜어내는 향미는 "당신 몸에 꼭 필요한 것이니 어서 잡수십시오." 하는 일종의 신호라고 한다. 게다가 포만감을 느끼도록 해서 과식을 막아 주기도 한단다. 뭐든 지나치게 먹는 습관을 가졌다면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닭고기를 예로 들어본다.
1948년은 미국의 양계업자들이 닭고기 개량을 시작한 역사적인 해였다. 덜 먹고 더 빨리 자라는 품종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그런 노력 끝에 오늘의 육계는 35일이면 출하할 수 있다. 품종개량이 이뤄지던 첫해와 비교하면 기르는 기간은 절반인데도 무게는 0.7킬로나 더 나간다. 당연히 먹어 치우는 사료의 양도 3할 정도 줄어들었다. 덕분에 70년 전 30달러 정도였던 닭 한 마리는 지금은 7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품종개량 첫 해인 1948년보다 오늘의 미국인은 다섯 배 정도 더 먹고 있다. '일인일닭'을 주창하기에 이른 우리도 만만치않다. 싼값에 많이 먹을 수 있으니 잘된 일이지만 그 대신 닭고기 고유의 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
향미는 무엇을 먹고 자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맛과 향이 근육에 축적되려면 풀과 풀벌레가 필요하다. 닭은 먹이의 30퍼센트를 풀로 먹는 동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옥수수와 콩으로 만든 사료만 먹는다. 그러니 다양한 풀에서 취하던 영양소도 맛도, 포만감을 주어 과식을 막아줄 식물의 2차 화합물도 갖출 수 없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닭이 영계라는 점도 문제다. 향미를 갖추려면 시간을 두고 오래 성장해야 하는데 고작 한 달에서 조금 더 지나면 후다닥 출하해 버린다. 참고로 닭의 자연수명은 30년이다. 이런 속성 양계와 출하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하면 갓난아기가 태어난 지 2개월 만에 300킬로에 육바가도록 키우는 일이라고 한다.
자, 고기에 맛이 없으니 어쩌면 좋을까. 양념으로 대신하는 밖에 없다. 소금물에 절이는 염지 과정 후 각종 향신료를 듬뿍 집어넣은 튀김가루에 버무려 튀겨내면 된다. 원래는 별다른 양념 없이 구워도 아주 맛있는 고기였는데 이렇게 안 하고는 밍밍해서 못 먹는다.
천주교인들의 향미
불과 150년 전만 해도 이 땅의 집권세력은 천주교인들을 제멋대로 잡아다 때리고 지졌다. 살을 찌르고 뼈를 분지르다가 최후에는 목을 베어 흐르는 강물에 던져버렸다. 아무도 미워한 적이 없던 사람들을 그 시대는 어째서 그토록 미워하고 저주했을까. 다음과 같은 신조가 위험했던 것일까?
"세상에는 선善이라는 근본이 있고, 임금보다 더 높은 심판자가 계신다. 그래서 다스림은 선해야 하고, 선하지 않은 다스림은 당장 멸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귀하고 아무도 천하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을 때리지 말고, 그 생명에 해악을 가하지 마라. 이웃을 사랑하라. 잘못이 있으면 참된 뉘우침으로 삶을 깨끗이 하라."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서학이 두려웠을 것이다. 아래는 김훈의 소설 <흑산>에서 복자 정약종이 심문을 받는 장면이다. 가장 어두웠던 시대에 가장 빛나는 이성을 보여 주었던 천주교 공동체의 향기와 신앙의 맛을 느껴 보라.
정약종, 너의 사호邪號는 무엇이냐? "아우구스티노다. 사호가 아니라 세례명이다." 해괴하고나. 네 아비가 지어준 본명을 버린 까닭이 무엇이냐. "본명本名으로 돌아간 것이다. 새롭게 태어남이다." 너는 반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반듯한 인성을 갖추었을 터인데, 어찌 헛것에 들려 있는가. 너의 이른바 천주가 실재해서 세상을 주관하고 있음을 네가 증명할 수 있느냐? "증명할 수 있다. 쉬운 일이다. 어린아이가 웃으면서 걸어올 때, 나는 천주가 실재함을 안다. 그대들이 국법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가두고 때릴 때 저들의 비명과 신음이 천주를 증명한다. 그대들의 악행을 미워하고 또 가엾이 여기는 내 마음을 통해서 천주는 당신을 스스로 증명하신다." 저 독종을 매달아라. 매달아서 더욱 쳐라.
정하상 바오로의 아버지인 정약종이 서소문에서 맞이한 마지막 순간을 작가 김훈은 이렇게 묘사하였다.
"칼을 받을 때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서 죽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형리가 그의 청을 받아들였다. 이승에서 누리는 마지막 사치였다. 주여 오소서. 정약종은 하늘을 우러르며 웃으면서 칼을 받았다. 그의 웃음은 평화로웠고 큰 상을 받는 자의 기쁨으로 피어나 있었다. 칼을 쥔 망나니는 그 웃음이 무서워서 칼자루를 더듬었다. 망나니는 연거푸 술을 마시고 칼춤을 추며 밍빙 돌았다. 망나니는 한칼에 약종의 목을 끊어내지 못하였다. 정약종의 머리는 두 번 칼질에 떨어져 나갔다. 잘린 얼굴이 평안했다."
오늘의 치명수덕
역사학자 조광은 순교자들이 선택한 '치명'은 "우리가 바로 군자"라는 자부심을 드러내는 용어였다고 설명한다. 조선은 눈을 감고도 "자왈, 견위치명見危致命 견득사의見得思議"를 좔좔 외는 명색 선비의 나라였다. 행동하는 군자이며 신자였던 안중근 의사가 밤낮 지니고 있었던 말이 바로 '치명수지致命遂志'였다. 군자는 생명을 바쳐서 뜻을 완성한다"(주역 계사전) 치명수지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는 말이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라를 구하고 인류를 살려내야 한다는 군자의 정신에 입각하여 이 땅의 신앙인들은 웃으며 목을 내놓았다.
인류의 물질생산력이 막대해지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를 일삼는 인류는 지금 환경의 황폐와 함께 정신의 황폐를 겪고 있다. 30년전인 1991년 천주교회는 가톨릭농민회를 주축으로 '우리밀살리기' 운동을 주도한 바 있다. 죽임과 죽음의 땅에 살림과 생명의 농사를 제창하는 그 모습이 그토록 멋질 수가 없었다는 회고를 들었다. 무언가 세상을 이끄는 힘을 보았다는 것이다.
누구나 배고팠던 시절에는 밀가루를 풀어서 '밀가루 신자'라도 만들었는데, 한 세대 전에는 우리밀의 부활을 위해 뛰어다녔는데 이제 어떤 밥을 지어 대접할 것인가.
기후위기는 반드시 식량위기를 부를 것이다. 꼭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오늘의 치명수덕은 농자천하지대본의 정신으로 구현되어야 옳다. 교회가 나서서 농민들을 공무원처럼 우대하는 정책을 펼쳐보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빛두레 제15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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