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신조(天佑神助)와 상부상조(相扶相助)
헬렌 켈러 곁에 애니 설리번(1866~1936)이 있었다. 스물한 살에 헬렌의 선생님이 된 뒤 일흔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평생을 바쳐 눈과 귀와 입이 되어 주었던 사람. 그가 아니었다면 두 살이 되었을 무렵 열병으로 시청각 능력을 잃었던 아이는 영영 고요와 어둠의 무덤 밖으로 나올 수 없었을 게다. 사물의 이름을 익히고 문장을 만들고 제 뜻을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애니의 사랑과 헌신에 힘입어서다.
아이가 선생님을 처음 만나던 1887년 3월 3일은 천우신조의 날이었다. 둘은 서로를 통해 성장하고 위로받는 벗이며 동반자였지 어느 한쪽의 전적인 희생으로 다른 한쪽이 덕을 보았던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실로 헬렌은 설리번을 통해 세상으로 나와 관계를 맺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설리번은 헬렌을 통해서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으며 훌륭한 교육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애니 설리번은 찢어지게 가난한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잖아도 불우했는데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달아났다. 의탁했던 보호시설은 더없이 끔찍했다. 같은 해 입소한 아이 스물일곱 중에 애니 하나만 생존하였다. 헬렌은 그가 가슴속에 꾹꾹 묻어 둔 슬픈 비밀을 아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가 야생의 동물처럼 울부짖거나 신음하던 아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자신이 지독한 상처와 흉터를 가진 사람이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렌의 아버지는 반맹인인 애니가 도착하던 날, 장님이 어떻게 장님을 가르친단 말이냐면서 무시했지만 오히려 그점이 바로 선생의 자격이요 놀라운 교수법의 비결이었다. 훗날 그들을 아는 사람들은 두 사람이 '다른 몸을 지닌 하나'였다고 회고했다. 요컨대 세상에는 받기만 하는 사람도 주기만 하는 사람도 없다. 헬렌은 받은 그 이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었고, 애니 설리번은 주기도 많이 주었지만 받기도 많이 받았다. 슬픔이 많은 우리 인생사는 이런 상부상조의 전통으로 인하여 줄기차게 이어지는가 보다.
-통즉불통(通則不通)
세상의 차별과 괄시 때문에 저 혼자서 시들고 말라가던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얼굴을 드러냈다. 오랜 세월 세상 바깥에서 외롭게 지내던 자였는데 어느 '한 사람'을 만나면서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렸다고 한다.(마르 7,35)
사람이 성의를 다하면 광야에서 물이 터져나오게, 사막에서조차 냇물이 흐르게 만들 수 있나 보다. 구약성경은 예수님이 해주신 따뜻한 선행을 '하느님의 보복'(이사 35,4)이라고 불렀다.
누구나 다 아프고 인생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하지만 사람은 얼마든지 서로 어루만져 줄 수 있고 낫게 해줄 사랑의 능력자다. 헬렌 켈러가 '인생은 고난으로 가득하지만, 고난의 극복으로도 가득하다.'고 말했던 것은 그런 뜻이었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이미 의사가 되어 일하는 'OO'씨의 의전 입학 취소를 발표하면서 생중계까지 하였단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모질면 안 된다.
"태어날 때의 울음을 기억할 것/ 웃음은 울음 뒤에 배우는 것/ 축하한다 삶의 완성자여/ 장렬한 사랑의 노동자여"(김선우, 고쳐 쓰는 묘비), 이런 시라도 좀 읽고 살아라. 망령된 자들아.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발행 '빛두레'에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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